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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의 정형적인 모습
이름있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의 쇼장앞에는 으례히 디자이
너 지망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 줄을 지어 있다.
그들은 앉을 자리도 없이 서있거나 혹은 통로를 비집고 까치
발을 하거나 혹시 운이 좋으면 맨앞자리 발밑아래로 우르르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시작될 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
곤 한다.
그리고 잠시 다소 루즈한 잡담과 함께 웅성웅성 자리를 찾는
동안, 쇼가 시작되는 신호음악이 울리고 불이 꺼지면 사람들
의 기대는 절정에 달하게 된다.
콩쿵거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자신들의 일상생활과는 일탈된
듯한 화려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커다란 트랜
드를 축으로 형성된 디자이너 나름대로의 컬러와 개성을 만
끽하며 미묘한 흥분을 맛보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의외의 아이디어와 소재의 매치등으로 새삼
스럽게 주목되는 작품도 있지만, 그저 자주 보는 쇼의 어렌
지 정도이거나, 약간은 기대이하여서 관람하는 기자들이나,
바이어 혹은 관객들이 귀엣말을 나누거나, 지루함을 노골적
으로 표현하는 등, 전체적으로 쇼의 분위기가 느슨해져 버리
는 쇼도 있다.
그리고 잠시 음악이 멈추고 어스름해진 회장에 갑자기 환하
게 불이 밝혀지면, 약간의 소동이 일어난다.
피날레 장면에서 줄지어 나온 모델들 사이에서 수줍은 듯이
디자이너가 등장하고, 관객들이 스테이지 앞으로 꽃다발을
들고 쇄도하는 것. 그렇게 의미없이 보내는 한순간의 박수소
리와 함께, 하나의 컬렉션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습관
『그냥 습관처럼 하는거니까 그러려니 해요..』
쇼를 막 끝내고 나온 한 디자이너에게 소감을 묻자 시쿤둥하
게 이런 대답을 한다.
극히 사적인 질문에 자연스러운 대답일 뿐이였지만, 이말은
명백히 우리 패션의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이였다.
쇼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을 붙들고 물어보아도 대답은 마찬
가지이다.
영문도 이해도 못한 작품들에 대해서 후하다면, 「재미있었
다」는 표현을 하거나, 기껏해야 쇼적인 맛이 없다는 평을
한다.
그리고, 좀더 적극적이라면 이름있는 디자이너에게 몰려가
사인정도를 받아내고 하나의 개인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그만
인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 날자의 신문과 잡지는 컬러플한 장식용으로
패션쇼를 활용한다. 가장 위대한 컬렉션이였다고...
매사가 이런식이라면, 우리의 컬렉션문화는 뭔가 크게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의미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그저 그러려니 한다』는 것…
이것은 지금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정말 솔직한 자기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책임있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열정도 흥분도 식어버린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말은 여러 가지면에서 고개를 갸
웃거리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패션이라는 고부가가치적 뉘앙스
의 외래어가 만들어 준 만들어진 의미없는 네임밸류의 환상
으로 더이상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냉정함
을 찾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컬렉션이란 무대위의 모델들이 디자이너의 작
품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내고, 관객들에도 그를 통해
서 전체적인 패션의 흐름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세계를 어필함과 동시에 비지니스적인 연계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찬사에 익숙한 디자이너들은 엄청나게 부플
어 오른 자신의 네임밸류에 가려져 진정으로 중요한 비지니
스에 대해 얼마나 무방비 상태였는가를 인식해야 하는 시점
임이 틀림없다.
전문가 부재시대
실지로 주위를 살펴보면, 그 엄청난 세계시장을 향한 비지니
스적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비평해
주는 전문가의 존재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나 마구자비로 해대는 비평과 지적을 환영한다
는 뜻은 아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무런 방향도 모르는채 그저 모든것을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비전문가들의 검증없는 비평은 이유
없는 찬사만큼 공해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레이가 유행이면, 그레이를 일제히 내놓으
면 그만이고 에스닉이 유행이라고 하면, 에스닉을 강조하면
되며 복고면, 복고풍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내면 된다는 식으
로 공식에 맞추어서 이럭저럭 만들어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
이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어설픈 눈으로 보아도 지금 패션계에는 찬사는 난무해도 제
대로 된 방향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어쩌면 지금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으며, 어
디쯤에 와있으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그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는 물론, 눈에 보이는 결과도 찾을 수 없는 무의미한
컬렉션을 되풀이 하는 것에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냥 그러려니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