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
일본인들은 김치를 좋아한다.
간혹 한일간의 사생결단을 내는 축구경기가 열린다고 하면,
한꺼번에 밀려드는 「울트라 닛퐁」이라는 응원단들을 위해
가장 먼저 비상이 걸리는 것은 운동장이 아니라 국내의 김치
가게들이다. 그리고 실지로 일본 현지에 가서 사먹는 김치
는 하나도 맛이 없다.
신김치인지 백김치인지 물김치인지, 맵기만 하고 이상하게
전혀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무리 해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의 손맛, 그
리고 물맛, 거기에 정신적인 에센스까지 동원하여 「가장 한
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추상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고 만족해 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닉의 의미
사실, 요즘은 패션에 있어서도 에스닉이란 트랜드 테마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인종과 민족,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이 단
어는 다소 토속적인 패션으로 유럽인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
고 있어 메인시장에는 못들어가도, 니치마켓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로 채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갖가지 패션에 질리도록 혜택을 받고 있는 유럽인들
은 뭔가 동양적인 인간의 향취속에서 색다르고 고급스러운
미의식을 발견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컬렉션 어디를 보아도, 전통적인 모티브
를 채용한 제품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만큼 독특한 아이디
어로서의 존재성의 어필로 약간의 전시적 효과도 있었던 것
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장점 찾아내기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대가 진지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동안 미처 소화되지 못한 패션이라는 외래어를 감
성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면서 비지니스를 자부해 온 것이 들
통이 나버린 것과 같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금 만약 김치를 미국 사람이 먹는다면 그것은 에
스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사람이 먹는다면, 결코 에스닉이 아니다.
이말은 일본사람에게는 이제 김치라는 것은 결코 생소하지도
이색적이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잡은만큼, 좀 더 잘 만들어
서 보다 철저하게 상품화를 시켜야 한다는 김치시장의 성숙
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우리에게 시장의 주목을 모으기 위한 향
료와 같은 에스닉적 의미가 어느사이엔가 모든 것의 메인으
로 통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다가와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테마에 설득력이 있는만큼, 덧붙여서 말하자면, 현재 우리
패션이 세계시장에 나가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이슈는 자신
만의 「개성과 장점 찾아내기」이다.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나름의 색과 인품
이 저절로 느껴진다.
이처럼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작품이므로 구태여 강조
하지 않아도 절대 한국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니트든 자수든 자신의 강점을 재빨리 발견하여 그의 컬러를
입혀나가면, 그것이 한국적 디자인의 원류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감성산업으로서 생활문화산업으로서 우리의 전통이란
꿈많은 미래형산업으로서 수없이 개발해 갈 수 있는 무궁무
진함을 안고 있으므로 전통은 제대로 된 재평가를 받아야 마
땅하다.
그러나 막상 패션과의 연계로 해외시장에 나갈때는 어디까지
나 향료적인 역할로서 적당하게 가감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
라는 생각이 요즘 와서 부쩍드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패션은 감성이 아닌 의지
냉혹한 글로벌한 시대에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연기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것은 세계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모습으로 재연출
이 되어야 하며, 자신만의 장점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패션은 감성이 아닌 의지로 부딪쳐
야 할 것이다.
예를들어 에콜로지를 테마로 한다면, 집단 히스테리적으로
내추럴 컬러와 소재의 채용으로 치닷는 것이 아니라, 에콜로
지를 테마로 한 브랜드와 숍과 마케팅 방법을 함께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재, 디테일, 패키지등에서 우리의 에콜로지적 요소
에 대한 관심을 전세계에 호소해야하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 이것이 글로벌 시
대의 새로운 감성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적어도 2천년은 대변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연장선이 아닌, 시대의 파라다임이 바뀌기 때
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의 테마의 도출만으로 만족하고, 중요한 내용을 잊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채, 점차 시대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듯
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모든 것을 제자
리에 놓고 자신의 패션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기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