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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월
새 털을 입은 사슴였노라.
그 날에 환한 샘터와
철죽꽃 활짝핀 산에서
한종일을 기다린 사람은
성명도 얼굴도 모르는 소녀였노라.
먼 하늘아래 노고지리 비비비비…
이는 소녀의 속사귀는 음성이다.
나의 발 아래 솟는 샘은
소녀의 맑은 눈동자라
다박솔 사이를 스쳐 오는
바람은 또한 소녀의 숨소리라 하고
사향(麝香) 풍기는 동산에서
나 길이 살리라 바랬더니
연륜(年輪) 피빛으로 돌아서
수피(樹皮)는 주름 잡히고
수 없는 성진(星唇) 흙속에 묻혀
철따라 꽃은 난만히 피어도
상긔 음력 보름이 오면
흰 달이 교교히 한 밤을 떠가도
기다리는 소녀는 오지 않고
나의 턱 밑에 수염만 서리어
이제 지구 어느 표면에
둥근 흙무덤이 또 생기겠구나.
아 외로운 묘비(墓碑)여
새겨 논 이름자는 <보헤미안>
정처없이 표랑(漂浪)하는
천고(天孤)의 족속.
거문고 줄은 낡아 노래는 목이 쉬어
진정 뼈가 저린 가락인 것을
나의 소녀는
왜 들을 줄 모르는가?
왜 돌아 올 줄 모르는가?
▶「보헤미안」이란 박화목(朴和穆)님의 시다.
-누우면 하늘처럼 가까우면서도 먼 이상(理想)인듯-허튼 대
화들이 오가는 시장바닥에 잠겨 하염없는 세월들이 날아갔음
에 마음 아파하며 봄을 맞고 또 보내야만 하는 방랑의 시인
의 속앓이를 노래하고 있다.
이제 5월이다. 꽃들이 분분하게 바람에 지고 한편으로는 신
록(新綠)이 눈부시게 만산을 뒤덮는 희비쌍곡(喜悲雙曲)의 달
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랴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렇듯 지는 꽃을 슬퍼함은 조지훈(趙芝薰) 시인뿐만은 아
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씨는 우리들의
상정(常情)이다.
-강한듯 약한듯 작은 생명의 최후는 5월 훈풍에 떨어지지만
그 자리엔 신록이 꽃보다도 더 찬란하게 피어나고 5월의 환
희는 신(神)의 부드러운 손길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그런데 오늘 지구촌은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구미
각국에선 무서운 태풍에다 폭우가, 또 때아닌 폭설까지 가세
했다.
지난 4월 중순경에는 우리나라 경남 하동엔 2센티나 되는 우
박으로 농작물 피해가 컸다.
<기상청>은 엘니뇨 영향이라 하지만 이러다간 5월의 훈풍이
곧바로 여름으로 접어들까봐 걱정이되는 작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