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천국과 지옥
요즘 세계는 서구인들의 장밋빛 생활과 현실간의 갭을 자국의 경제 능력으로 채우지 못해 극우적인 사상으로 치닷거나 민족분열의 현상의 진통으로 요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굶어 죽느냐’아니면 ‘총에 맞아 죽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지옥과 애완용 강아지의 간식을 고르는데 몇시간씩 고민하고 있는 졸리도록 나른한 천국으로 양분되어 있는 듯 하다.
말하자면 지금 세계는 ‘빈익빈·부익부’라는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 그대로 ‘있는 놈은 터져죽고, 없는 놈은 곯아죽는’극단적인 판의 구도로 치닷고 있는 것이다.
호색가 빌 클린턴의 지퍼게이트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직면하고 있던 재앙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던 시절, 역사상 가장 윤리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던 빌클린턴의 체면을 위해 애꿋은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연일 죽어나야 했다.
지각있는 미국인들은 지루해 하면서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렸겠지만, 백악관을 둘러싸고 무성하게 나오는 각종 불미스러운 소문들은 값진 평화와 번영을 낭비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으로 다소 체신머리 없이 비쳐진 것도 사실이다.
실지로 그들은 지난 10년동안 사회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희소식의 시대를 만끽해왔다.
그런 미국에 전세계의 눈이 집중되어 있다.
이번에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뉴욕과 붕괴된 빌딩들, 그리고 월스트리트가의 침체로 종말을 맞고 있다는 가시돋힌 예견을 뒤로 한 채 보복을 향해 맹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예전과 다르다면 좀 다른 모습이지만…
세계경제 파라다임의 대이동
문제는 신자유주의 확산을 위한 미국의 힘의 외교와 중동 국가간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의 양상이 심화됨에 따라 세계경제가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20세기 말 걸프 전쟁으로 호황을 누려 온 미국이 다시 중동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설사 고전을 한다고 해도, 세계적 공황이 일어나기는 힘들다는 것이 대세적인 관측이다.
게다가 겉보기에 부럽기 짝이 없는 그들의 번영과 자유에 대한 종말을 예견하기에도 주변의 조건이 너무나 열악하다.
‘그저 살면 되는 미국인’과 ‘ 기필코 살아내야 하는 아프카니스탄인 ’ 차이처럼 삶의 질이 전혀 다른 민족간의 전쟁 역시, 대세가 기울어진 판을 보는 듯한 느낌 그자체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신세기를 향한 새로운 ‘세계 경제의 대이동’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즉, 이것은 휘청거리는 미국경제의 틈새에서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유럽 EC경제권들의 부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 주역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그들에 있어 이미 몇십년전부터 준비하고 겪어 온 평범함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그야말로 혼란하기 짝이 없는 대지각 변동으로, 그동안 모조리 미국을 향해 집결되어 있던 우리의‘글로벌 스텐다드’의 원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양적 팽창과 규모의 경제가 통했던 대미 수출업체보다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제품의 경쟁력을 쌓아왔던 유럽 수출업체가 호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여기에서 기초하고 있다.
인터넷 통판도 이의 하나의 형태로, 할인숍과 SPA, 또는 기업의 M&A에 이르기까지, 급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일련의 이런 변화들은 우리에게 전혀 익숙치 않은 ‘합리성’과 ‘공평성’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속속 밀려올 것이 불보듯 뻔하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상관습을 무시하고 새로운 계약조항을 만들어 낼 것이며, 더러는 상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접근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속수무책 휘둘림을 당해야 한다는 경제속국으로서의 완연한 패배주의인지도 모른다.
“변하느냐…죽느냐”
그렇다면 지금 세상은 “Change or Die”(변하느냐 죽느냐)라는 양자의 논리에 빠져있다.
‘죽지 않으려면 변해야 한다’는 이 명백한 선택앞에서, 지금 가장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앞으로 다가오는 100년을 또다시 후진국으로 뒤처져 살지 않기 위한 생존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매일매일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한국에서 파는 물건은 한국의 마켓에 맞추어서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러나 글로벌 스텐다드에 맞춘 이상, 전세계에서 상품을 끌어 모아올 것은 확실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시장에 맞는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외엔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골리앗과 같은 그들의 거대 유통업체와 어패럴 메이커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병은 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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