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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를 묻는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
꿈이 뭐냐고 묻는다.
세상이 어떠냐고 묻지 않는다.
감성(感性)이 어떤가를 묻는
다.
이것은 오랜 세월 멋과 순수와 정서를 추구해온 어느
<낚시인>의 희미한 추억의 한 토막.
그는 60여년동안 자연과 더불어 낚시를 즐겨오면서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이란 말에 심취한다.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이 크게 그러하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같으면서도 실로 가장 크게 자연스럽다”-는
뜻이란다.
그는 순 서울나기이기에 낚시를 통해 자연을 공부하며
시골인심에 가까우려 노력함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찾는
다.
-실타래子는 그런 자신을 사랑한다…….
▼10월이 다가고 내일모래가 11월이다. 붕어낚시의 황
금기는 봄과 가을이지만 10월말에서 11월이면 가을붕어
낚시도 종막을 고해야할 시기다.
오랜 세월 주말이면 줄기차게 서울장안을 빠져나간 실
타래子에겐 각가지 사건사고(事件事故)들이 쑬쑬했다.
어떤 때는 낚시때문에 <목숨>을 건졌고 어떤 때는 그
목숨을 잃을뻔도 했다.
또 단골 낚시터의 농가 사람들과는 친척 이상으로 가까
워져 3대에 걸쳐 다정하니 오늘도 왕래하고 있다.
-더구나 마음이 통하는 <낚시친구>들을 사랑하고 아
낀다.
▼그것은 몇년전 이맘때인 10월말의 어느 주말. 오곡백
과가 무르익고 나무잎들은 누렇게 단풍이 물들어 한가
로움의 행복이 두려움마저 자아낼 듯 싶은 시공이었다.
벼를 비어내고 난 다음 붕어가 잘올라오는 「망월 수로
(望月水路)=강화 내가(內可)저수지의 지류」로 친구인
치과의사 “이승철”박사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수
로의 상류-수문(水門)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좋다……참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 이박사는 토
해 낸다. 그는 으례히 낚시터에 다달으면 <심호흡>과
더불어 노래처럼-어린애처럼 <좋다>를 연거푸 외쳐대
곤 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탁한 공기와 환경속에서 하루 종
일 환자들을 치료하다 1주일만에 도심을 빠져 나와 맑
고 깨끗한 대자연의 품에 안기면 정녕 「살맛」이 날지
도 모른다. 그것도 제일 좋아한다는 「친구」가 옆에
있어서이랴-.
▼망월수로의 그날 「조과(釣果)」는 그런대로 심심치
않았다. 이박사와는 불문율로 낚은 고기는 그 자리에서
다시 놓아주는 방류(放流)의 또다른 낚시의 만족감을
누리곤 했기에 그는 :”엄마젖 더 먹고 커서 다시 오너
라”고 웃으며 붕어입에 걸린 낚시 바늘을 조심스럽게
빼고는 물가에다 가만히 놔주는 모습은 「동심여선(童
心如仙)」의 경지를 방불케 했다. -어린이같이 욕심없
는 마음은 신선과 통한다-는 그것-.
실타래子가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지만 낚시에 있어 <
고기>는 이차적이다. 「내일 낚시간다는 설레임(60년이
됐는데도 변함없이…)」과 친구들과 만나서 세상의 나
쁜 놈들 욕하는등 잡담하며 낚시길에서 들리는 단골
「해장국집」들-낚시터 근처의 농가 사람들과의 반가
운 만남등등 그 <과정>이 고기보다 몇배 더 소중한 것
이다.
▼망월수로의 그날은 참으로 쾌적한 만추(晩秋)의 풍광
인데다 이박사의 기분이 매우 좋아보여 덩달아 즐거웠
다.
1.4후퇴때 평양에서 홀로 남하한 이박사는 가족을 이북
에 두고 있어 어딘가 <애수>에 잠기곤 하는 사나이의
「감춘 슬픔」을 이따금 엿볼 수 있었기에 실타래子로
는 동정도 동정이지만 우정이 남달랐다.
-그와 망월수로에 앉아있을 때 동리의 초등학교 2·3
학년짜리 아이녀석이 우리들 옆에 와서 밉지않게 이런
저런 말벗(?)이 돼주곤 했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우리는 낚시도구를 챙기고 둑위에
세워뒀던 차에 올랐다.
강화읍(지금은 인천광역시 강화구지만)의 단골 음식점
에 들려 식탁을 끼고 앉았을 때 이박사는 “아까 망월
수로의 그녀석 있지? 그녀석에게 칸반짜리 낚싯대 하나
를 주고 왔어…낚실 좋아한데서…그런데 그놈 성이 희
성인 「봉」가랬어-하하하” (이북에 두고 온 어린 것
들이 생각났을 게다).
▼근 40여년을 같이하던 그는 이미 5년전 이 세상을 떠
났다.
-낚시터주변의 들국화 하나에도 무심치 않던 이박사의
체취가 요즘도 그 물가에서 코에 찡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