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윤수영 부회장 퇴임 “정상으로 돌아가는 나와의 약속”

2017-06-02     정기창 기자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윤수영 부회장이 지난 6월4일자로 공식 퇴임했다. 김동수 前 부회장 잔여 임기를 포함 약 45개월여를 봉직한 후 스스로 퇴임 의사를 밝히고 민간인 신분이 됐다. 여유로운 삶을 꿈꾸던 평소 언행에 비춰볼 때 주변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부회장은 지난 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결단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퇴직 후 어디 갈 생각은 없다. 자리가 있어 나가는 것 보다 있어야 할 자리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그가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4년여 시간은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불경기로 국내 섬유패션산업 역시 불황에 신음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2013년 섬유류 수출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지난 3년간 계속해서 내리막 길을 걸었다. 2014년 소폭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10.2%, -4.6% 역신장 했다. 여기에 작년 말부터 사드(THAAD)로 촉발된 對中 교역 악화는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많은 의류패션기업을 위기 상황으로 내 몰았다. 국내 모든 섬유패션 단체 상근직 중 가장 많은 책임과 권리가 뒤따르는 그 자리가 결코 녹록하지 만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재임 중 그는 성기학 섬산련 회장과 보조를 맞추며 굵직한 사업을 다수 추진했다. 미국과 베트남에서는 한국섬유기업이 주축이 된 섬유공단 조성 사업이 물꼬를 텄다. 에티오피아, 미얀마, 키르키즈공화국 같은 비주류 국가들과는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았다. 한류대표브랜드협의회가 그의 임기 중 출범했고 작년에는 섬유센터 신축이라는 큰 과업을 앞두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원활한 대화 창구 역할을 했다. 2016년 구성된 한류대표브랜드협의회는 결실을 맺으려던 시점에 사드라는 돌발사태를 만나 악전고투했으나 올해 하반기부터는 어느 정도 진척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사업은 당장의 결실이 아닌 수년 내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는 점에서 산업 장기발전 비전을 제시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다.

36년간 봉직 마치고 여유로운 은퇴
섬산련 재임 중 큰 사업 바탕 다져
百歲시대, 은퇴가 안기는 인생 의미는
‘뒷방 늙은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
자신을 돌보는 가치 있는 시간

윤 부회장은 2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1981년 경제기획원에서 시작해 2009년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1급)을 끝으로 28년 공직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8대 사장을 거쳐 2013년 섬산련 부회장으로 부임했다. 윤 부회장은 2005년 초 산업자원부 섬유패션과장 당시 언론 기고에서 “40년 동안 지속돼 온 섬유쿼타제도 폐지로 섬유산업에 바이오, 나노, IT 등 첨단기술을 접목해 고부가가치 기간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썼다. 현재까지 이어온 산업간 경계 허물기와 섬유IT 융복합 시도가 그에 의해 이미 10년 이전부터 태동되고 있었던 셈이다.윤 부회장은 이제 36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사회·경제적 제1의 삶을 뒤로하고 자신을 돌보는 제2 인생에 대한 장기플랜에 들어간 듯 하다. 여유로운 노년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은퇴를 ‘할일 없는 뒷방 늙은이 신세’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평범한 직장인 입장에서 보면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가 펼치는 제2 인생에는 ‘사색과 산책’ ‘미술과 음악’ ‘운동과 등산’의 3有가 보인다.
“자신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에만 몰두하는) 지금이 방치된 상황 아닌가 싶다. 책 읽고 음악 듣고, 그림과 예술을 즐기고, 사색하고 운동하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술은 삼가려 한다. 집에서 1주일에 한번 정도 와인을 간단하게 즐긴다. 밖에서 술자리 하면 시간이 낭비돼 좋아하지 않는다. 골프를 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참에 저술활동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윤 부회장은 2007년 ‘세속 경제학’을 펴냈다. 딱딱한 경제서와 달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우리 주변의 경제현상을 풀이해 반응이 좋았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추천도서상’을 받았고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로 선정된 양서다. 식사나 모임에서 지인들이 책을 출간할 것을 강권해 썼다고 한다. 이미 10년이 흘러 시대에 맞는 개정판을 쓰려고 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퇴는 백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명확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고비를 떠 안긴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자신과의 약속’은 뒷방 늙은이 신세와 다르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오십을 목전에 둔 나의 노후를 생각해 봤다.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