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관 시몬느 회장 - “100년 역사 쓰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韓패션기업으로”

390명 직원 경험·지혜 ‘5800년’ 핵심가치 30년 동안 18만 스타일 ‘아카이브’ 구축 표준화·산업화된 장인정신 앞세워 브랜드 태동·성장 이끄는 플랫폼 자임

2018-07-14     정정숙 기자

1987년 창업한 시몬느는 첫해 45억원에서 30년이 흐른 현재 1조1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한국 대표 토종 핸드백 제조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시몬느 창립 30주년을 맞아 전 임직원이 해외로 한마음 연수회를 떠나는 6월 28일 하루 전, 박은관 회장을 만났다. 이날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회사 앞 수변정원과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비를 맞아 촉촉해졌다. 핸드백 경험과 지혜를 담은 5800년 인적 자산과 18만 스타일 아카이브 제품을 품은 시몬느를 닮아 있었다.

박은관 회장은 “올해는 미래 성장동력이 될 신진 브랜드를 지원하기 위한 펀드를 만들 것”이라며 “서울에 뿌리를 둔 100년 가는 글로벌 패션 기업이 나올 때가 됐다. 시몬느 DNA인 제조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몬느는 봉제업에서 성장은 끝났다고 말하던 1988년 아시아에서 럭셔리 핸드백 제조 첫 걸음을 뗐다. 현재는 전세계 핸드백 시장 10%, 미국 핸드백 시장 30% 물량을 수출하고 있다. 연간 전세계 15개국에서 산 가죽 소재만 1억2000만평(1평=30×30cm)에 달한다. 이중 30~40%는 한국산 소재다. 글로벌 기업 한 곳이 국내 수많은 소재 업체들 활로를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시몬느는 지난해 캄보디아공장을 또 하나 지었다. 1991년 중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9개 해외 공장은 총 3만3000명 이상이 근무하는 글로벌 수출의 전지기지다.

-여러 강의에서 기업 경영은 핵심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은 블루오션이며 봉제 산업에 기회가 있다고 청년들에게 연설했다. 핵심가치는 무엇이며 왜 제조업(봉제)이 블루오션인가.
“우리의 핵심가치는 ‘최초·장인 정신의 산업화·플랫폼’이다. 시몬느는 1988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미국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첫 장을 열었다. 미국 3대 디자이너 브랜드로 창의성이 돋보이는 마크제이콥스(2000년), 상징성이 뛰어난 도나카란뉴욕(1988년), 상업적으로 성공한 마이클코어스(2002년)가 처음 핸드백을 런칭할 때 파트너로 시작을 같이 했다.

미국 업계에서는 시몬느를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표현하고 ‘네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와 함께 해라(to be the best work be the best)’라고 말한다. 2년 전부터 시몬느와 세계 최대 여성속옷 제조업체인 레지나 미라클 인터내셔널은 혁신개발제조사로 칭하는 IDM업체로 불리고 있다. 전세계 패션업체 중 여기 단 두 곳만 갖고 있는 호칭이다.시몬느가 제조자개발생산(ODM)에서 한 발 더 나아가 IDM(Innovative Design Manufacturing) 회사가 된 배경에는 전 임직원의 5800년 자산이 밑바탕이 됐다. 5800년은 핸드백 경험과 지혜가 담긴 평균 16년 근속연수와 390명 임직원 경력을 합산한 수치다. 환갑을 넘긴 14명 장인과 3주 전에 입사한 직원이 포함됐다.이들이 30년 동안 만들어 놓은 아카이브에는 18만 스타일 제품과 패턴이 있다. 럭셔리 브랜드 소속 디자이너들은 시몬느가 스케치 디자인 해석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래처가 스케치 100개를 주면 그중 98개는 18만개 아카이브에 있다. 새로운 것은 1~2개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핵심가치는 기술적 혁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몬느는 손 정성이 들어가는 공정을 8년 전부터 균일화·표준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추럴 핸들 손바느질은 미싱으로 하기 힘든 손공정 작업이다. 시몬느는 8년 전부터 미쓰비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협력해 이 과정을 기계로 표준화했다. 약칠한 후 말리는 공정도 표준화됐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끝에 열선을 깐 드라이 컨베어 시스템을 만들었다. 드라이 컨베어 시스템은 온도, 바람, 속도 조절이 돼 72시간 말리던 약칠 공정을 24시간으로 단축했다. 시몬느는 제조 수출업체지만 디자인 하우스적 요소와 에이전트 역할을 하는 풀 서비스 컴퍼니가 됐다. 미국 바이어는 시몬느를 플랫폼이라 부른다. 우리도 좋은 바이어가 필요하지만 핸드백을 신규 런칭하려는 브랜드 입장에서 보면 시몬느가 디딤돌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개발로 풀서비스 컴퍼니 역할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올해 창립 30주년이다.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기 위한 청사진은.
“시몬느 창립 첫 해인 1987년 봉제공장은 3D업종 취급을 받았다. ‘봉제 다 끝났는데 왜 막차를 타느냐’며 한계 산업이라는 지적을 들었다. 지금은 글로벌 선두 기업이 됐다. 시몬느는 주로 IDM를 하고 있지만 3~5년 후에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 미래 성장 동력 창출에 힘쓰고 있다. 자회사인 시몬느자산운용은 브랜드 M&A를, 시몬느인베스트먼트는 브랜드 인큐베이팅, 0914는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0914’는 긴 여정을 두고 키운다. 시몬느가 가진 핵심가치인 플랫폼으로 이들 브랜드 파워를 끌어 올릴 수 있다. 또 브랜드 인큐베이팅을 위해 조만간 100~200억원을 투입해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젊은 디자이너와 외국 브랜드 중 창의성과 재능이 있으나 비즈니스와 자본력이 부족한 브랜드를 발굴해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는 이탈리아 액세서리 브랜드 스테파니아 프라마(Stefania Pramma)’를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M&A는 자금력이 부족하거나 핸드백 개발이 덜 된 브랜드 위주로 발굴·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 시몬느는 2015년 0914 자체브랜드를 런칭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
“시몬느는 한국에 정체성을 두고 있다. 국내 디자이너는 역동성과 창의성이 뛰어나다.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파리, 밀라노, 런던 같은 서구적 스타일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 뿌리를 둔 글로벌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시대다. 한국은 사회적 문화적 국가 성숙도가 높아졌고 지난 30년 동안 디자이너 인재풀도 풍부해졌다. 전세계 럭셔리 브랜드에 한국 디자이너가 없는 회사는 거의 없다.

신규 브랜드사와 디자이너들도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성숙했고 디자인 인력도 풍부한 역동적인 나라다. 패션 정체성에 바탕이 되는 요소를 갖췄다. 0914도 그 바탕 위에서 시작됐다. 0914는 손의 힘, 땀의 가치가 있는 독창적 브랜드다. 거래처 견제도 있을 수 있고 제조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시행착오가 있다. 그러나 흔들리면서 피는 꽃처럼 키울 것이다. 소나무가 단단히 뿌리 내리고 성장하는 데 7~8년 이상이 걸린다. 0914도 소재 개발을 잘하고, 좋은 품질과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할 것이다.”

그는 “아시아 패션업계 시계를 가리키는 말이 있다”며 “동경은 오후 3시. 아직 중요하지만 지는 해다. 상하이는 오전 10시다. 그 해가 언제 클지 모른다. 서울 패션시계는 12시에 있다. 코리아 컬렉션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보그인터내셔널 편집자인 수지 멘키스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올 때가 됐다. 시몬느가 가장 가까이 와 있다”고 한 말은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