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스타트업(Startup)이 한국 섬유패션산업 미래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분야 스타트업은 2010년을 전후로 태동하기 시작해 최근 들어 창의적이고 유연한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청년 기업가들이 나타나면서 활짝 만개하고 있다. 본지는 기업 및 브랜드 인지도와 상품성, 창의성을 기준으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총 42곳의 스타트업을 소개했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난 후 이들 중 성취가 뛰어난 10개 기업을 선정, 한국시장에서 패션 스타트업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한다. 본지 취재 결과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패션 스타트업에는 일관된 성장 공식과 뚜렷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관련기사 A1~A11면 PDF참조
■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라
유니크한 데일리룩을 표방하는 카이머(KYIMER)의 김윤지(23) 대표는 수영선수였다. 전국소년체전 접영 200m 부문에서 1등까지 한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다. 김 대표는 선수 은퇴 후 패션 디자이너로 방향을 틀었다.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성향이 인생 제2막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강신권(30) 보울하우스(BOULHAUS) 대표는 가죽을 다루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핸드백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2016년 회사를 설립하고 2년만에 해외시장에서도 독창성을 인정 받는 브랜드가 됐다.
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스타트업 창업자는 본인의 관심사와 취미에서 시작해 창업까지 가는 길을 걸었다. 카이머 김윤지 대표는 수영장에서 훈련 중간 쉬는 시간에 틈틈이 패션일러스트를 연습하고 쉬는 날에는 스타일리스트 겸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패션 디자인에 많은 시간을 바쳤다.
세계 최대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회장은 2013년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에 있어 수익모델과 사업 아이디어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 틈새시장을 공략하라
힐클립(Heelclip)은 마모가 생기는 구두 뒷굽을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보조굽이다. 구두 굽을 갈려면 보통 브랜드 본사 AS를 받거나 구둣방에서 1~2만원은 줘야 한다. 본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신발을 주고받기 불편하고 구둣방에서 수선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일경실업은 이런 점에 착안, 탈착식 힐클립을 개발해 자사 구드 브랜드인 ‘제스모아(JESMOA)’에 적용했다. 힐클립만 따로 살 경우 낡고 닳은 구두굽을 4000원에 해결할 수 있다. 일경실업은 업력은 오래됐지만 힐클립이 출시된 시점을 기준으로 상품력과 창의성을 높이 평가해 스타트업 브랜드로 소개했다.
마르헨제이는 오더메이드 핸드백 브랜드다. 동물 가죽 대신 인조원단만 사용해 사전 예약을 받아 상품을 판매한다. 동물학대라는 관점에서 천연가죽을 쓰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레디메이드가 아닌 오더메이드 방식의 생산·판매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마르헨제이는 2015년 설립 후 불과 3년만에 천연가죽 위주의 고급 가방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 처음부터 글로벌화를 목표로
한국 패션산업은 국내시장에만 매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브랜드산업 역사는 30여년이나 됐지만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딱히 기억나는 곳이 없다. 그러나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사장을 포함 10명 안팎의 소수 인원으로도 거침없이 해외 무대로 나간다.
랭앤루(LANG&LU)는 박민선(37), 변해정(36)씨가 강인한 의지와 끼로 의기투합해 2013년 홍콩패션위크로 데뷔를 알린 디자이너 브랜드다. 뉴욕코트리를 비롯, 프로젝트 베가스(PROJECT VEGAS), 태국 방콕·중국 심천패션위크 등에 참가하며 해외 홀세일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라스베가스쇼는 매년 참가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보울하우스 역시 설립 2년만인 올해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미펠(2018 F/W MIPEL The Bagshow)’ 참가에 이어 3월에는 ‘2018 홍콩패션 액세스’에서 1만불의 현장 오더를 따 냈다. 전시 사흘간 60여 바이어를 만나 제품을 상담하고 해외 시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대부분 스타트업은 자금과 인력이 기존 제도권 브랜드 회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지만 어려서부터 접한 해외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와 외국어 실력, 글로벌 감각으로 겁 없이 해외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강신권 보울하우스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내 브랜드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오히려 해외 시장이 유니크한 디자인적 가치를 더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보울하우스는 지금도 유럽 백화점 바이어들로부터 샘플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 IT융복합은 필수조건
온라인몰 맨4050의 허준(35) 대표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IT 벤처기업에서 일한 인재다. 그는 전공과 사회 경험을 살려 모바일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급속하게 생활화되는 모바일 트렌드를 읽어낸 것이다. 소비행위를 분석하고 이를 컨텐츠에 담아 체계적으로 시장에 접근했다. 4050세대를 겨냥한 점도 요즘 청년 기업인들의 열린 사고를 말해 준다.
수트에이블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맞춤복 시장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고 있다. 31살 동갑내기 신요섭·안지수 대표는 각각 이랜드, LG에서 일하다 평소 관심 많던 패션브랜드 런칭에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패션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원단과 줄자를 갖고 다니며 고객에게 옷을 맞춰 줬지만 앞으로는 3D 바디스캐너 같은 첨단 장비로 체촌 방식 차이에서 오는 고객 불만을 잠재울 계획이다. 그 동안 쌓인 고객 ‘사이즈 데이터’를 활용해 체형과 크기를 분석, 차별화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본지에 소개된 지 1년만에 매출이 2배로 껑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