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비닐봉투 단속에 속끓는 동대문 시장, “대체재가 없어요”
2020-04-05 최정윤 기자
3월 26일에도 동대문 시장은 저녁 8시부터 깨어나기 시작한다. 봄이 다가오면서 하늘은 이제서야 어둑어둑하다. 사람들은 하나 둘 거리에서 매대를 펼치고 천막을 설치한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는다. 거리는 한산하다.
대규모 점포에 해당하는 에이피엠(apM) 플레이스 ‘비플랜(BPLAN)’ 직원들은 공장에서 배달한 옷을 풀어 비닐봉투에 거래처별로 블라우스와 니트를 담는다. 포장이 끝난 봉지는 노끈으로 길게 엮어 복도에 놓는다. 지나가는 사람에 치여도 상품을 지킬 수 있게 옷 봉투를 하나씩 꺼내고 다시 꿴다.
에이피엠 플레이스 밖 길바닥에는 사입자들이 던져둔 상품이 쌓여 있다. 건물 1층에는 중국으로 물건을 보내는 사입자들이 급하게 비닐에 옷을 밀어 넣고 있다. 거래처에 물건이 도착하면 비닐은 역할이 끝난다.
동대문 시장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품이 상하지 않게 보호하면서 운송하기 편하게 포장하는 데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 시장 상인들은 4월 1일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되면서 시름에 잠겨 있다.
조용철 대표는 “최근 경기가 좋지 않은데, 포장재 가격마저 오르면 부담이 된다”고 한다. 비플랜은 거래처 주문량이 눈에 띄게 줄어 작은 2~ 3호 규격 봉투를 제일 많이 사용한다. 예전에는 가장 큰 규격인 8호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날은 9시 반이 넘어서도 복도는 여유로웠다. 조 대표는 “보통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가장 매출이 높지만, 이 복도만 봐도 그렇지 않은 걸 알 수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비닐봉투 대안으로 나온 잘 썩는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비닐보다 가격이 비싸다. 포장재 값이 오르면 원가가 옷에 반영돼 결국 옷 가격이 높아진다.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게 된다. 현재 비닐봉투 가격은 상가마다 마진을 남기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3호 봉투는 장당 70~17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요즘은 거래처가 주문하는 옷 개수가 적어, 매출이 낮은 가게일수록 종이 쇼핑백을 쓰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올레오더블유(ALLNEO-W) 상가 내 ‘토스트(Toast)’를 운영하는 소경훈 대표는 “대체재가 없다”고 말한다. 단속은 4월 1일부터 시행됐으나, 비닐봉투 기능을 가진 다른 포장을 찾지 못했다. 비닐이 가진 가볍고 얇고 튼튼하며 유연한 특성이 있는 대안은 아직 없다.
종이 가방은 비에 젖으면 옷을 보호하지 못한다. 소 대표는 “사입자들이 바닥에 옷을 늘어놓은 데 비가 오면 피할 수 없다”며 “특히 여름 장마 기간은 종이 쇼핑백이 버티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비닐보다 빳빳한 종이 쇼핑백은 물리적인 충격에도 잘 찢어진다. 그는 “사입자들은 시간이 촉박해 상품을 던져서 정리하는데, 종이는 비닐포장만큼 튼튼하지 않아 튿어진다”고 말한다.
그 외에 에코백은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무게도 더 나간다. 에코백에 옷을 담으면 사입자들이 한 번에 많은 개수를 옮기기 힘들다.
대규모점포 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에 대해 상인들은 입을 모아 유예기간이 짧다고 했다. 단속이 시행되기 며칠 전인 지난 3월 26일까지도 상인들은 본인의 점포가 대규모점포에 해당되는지 몰랐다고 한다. 혜양엘리시움의 한 상인은 “환경을 보호하려는 취지는 좋으나, 동대문 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다”며 “제대로 된 대안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