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공임인상 파업 1년…성수동 곳곳 잇따른 공장 폐업

수제화 공장 줄줄이 문닫고 퇴직금 소송에 허리 휘어 "경기침체로 힘든데…민노총 들어오고 불협화음 심해져"

2020-05-03     정정숙 기자
서울 성수역앞에는 수제화거리임을 알리는 아치형 조형물이 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조형물은 뚝섬역까지 이어져 있다. 이 거리는 대통령과 연예인 등이 찾으면서 이슈 거리가 되고 있다. 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첫 경제 행보로 수제화 청년 창업가가 운영하는 매장을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서울
이곳은 성수 수제화 희망플랫폼을 비롯한 수제화 명장 등이 운영 중인 매장 등이 이어져 있다. 성수역과 뚝섬역을 중심으로 구두 관련 공장과 부자재 매장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슈콤마보니, 미소페 , 바바라 본사가 있다. 성수역 3번 출구 인근 대림창고(성수이로 14길) 앞 사거리에서 보이는 연무장길에는 원단과 부자재 가게가 즐비하다. 대림창고 쪽으로는 화려한 커피샵과 트렌디한 음식점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일명 부자재거리로 알려진 연무장길 부자재 매장 앞 가판대에는 가방과 신발들이 놓여있다. 지난 4월 중순 기자가 찾은 거리 곳곳에는 빈 가게가 보이고 한 원단 가게 문 앞에는 완제품 제조 공장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인근 수제화 매장 대표는 “지난해부터 기술자 공임이 올라가고 원청 물량 오더가 줄어들면서 2층에 많았던 수제화 공장들이 뚝섬 구길로 빠지거나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성수동 일대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수제화 관련 가게들이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연무장길 한 원단 가게는 원단 대신 중국산으로 보이는 신발과 가방을 놓고 팔고 있다”고 말했다.
성수역 인근에 있던 세라제화 성수점은 슈즈와 핸드백을 40~60% 할인하는 패밀리세일이 한창이다. 지난 2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공장도 면목역 인근으로 옮겼다. 세라는 창립부터 40년간 성수동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성수역 인근에 있던 미소페 협력공장 슈메이저는 지난 1월 원청인 미소페 오더 물량이 줄어 심각한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했다. 슈메이저 대표는 중국 공장에 샘플을 의뢰해 브랜드에 합피신발을 수입 공급하고 있다. 지난 4월 연무장길 인근에 있던 금강제화 협력공장 C 공장은 문이 잠겨 있었다. 또 다른 금강제화 D 협력공장도 폐업위기에 놓여있다. 낙성대 탠디 협력공장도 5월 추가 폐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공장은 하루 200~300켤레 수제화를 만들었다. 금강제화가 그동안 쌓인 재고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올해부터 생산물량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설립, 국내 최대 규모 제화공장이었던 금강제화 부평공장은 명예퇴직으로 인력이 줄고 있다. 정통 굿이어웰트화를 만들 수 있는 라인과 시멘트 제법 라인이 들어서 있다.
수제화
금강은(2017년9월~2018년6월 기준) 전년대비 14.9% 떨어진 2514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2017년도 6.7%줄었다. 금강제화 협력공장 한 관계자는 “2월부터 금강제화 오더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촉발한 공임인상이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제화업계 경기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강제화 관계자는 “최근 수제화보다 스니커즈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줄어들어 회사에 1년 재고가 쌓여있다”며 “비효율적인 물량을 조정하기 위해 1~2개월 생산량을 줄였다”고 밝혔다. 그는 “경영상 내실을 기하고 협력업체와는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제화 산업집적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 침체에 빠진 수제화 시장 여파와 함께 지난해 공임상승요인과 맞물려 수제화 브랜드들이 완제품 협력공장에 오더량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협력공장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는 지난해 4월3일 탠디 사태(5개 하청업체 도급 제화공인 98명 파업)가 촉발한 이후 변화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부터 공임협상을 이끈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제화지부(이하 민주노총 제화지부)는 탠디를 비롯한 미소페, 세라, 고세 같은 중소중견 기업으로 협상을 확대했다. 민주노총이 임금 교섭에 나선 이후 1년 만에 제화 브랜드 협력공장 4곳 이상이 폐업위기에 처해 있다.

■ 협력공장 위기, 국내생산↓, 해외생산 ↑
지난 1년 동안 수제화산업의 가장 큰 변화는 국내 수제화 리딩 브랜드가 생산물량을 줄이고 해외 수입 물량은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제화 리딩 기업들은 중국과 경기도 성남 및 광주 생산 물량을 늘리거나 재고처분 명목을 내세워 생산물량을 줄이는 실정이다. 이에 성수동 기반 1차 협력업체 공장들을 비롯한 하청 공장 및 소규모 공장들이 줄어든 일감 때문에 폐업하거나 성수동을 떠나고 있다.

D협력 공장 대표는 “해마다 브랜드 매출이 떨어지면서 국내 수제화 기업은 국내 생산물량을 줄이고 있다”며 “경기 침체로 수제화 업계가 힘들어지는 와중에 작년 민노총이 들어오면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공들에게 권리보장은 당연하다. 지난해 탠디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도 올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원청인 브랜드사와 얘기해 갑피와 저부 기술공들에게 공임을 각 1000원씩 올려줬다”고 전했다. D 회사는 작년 납품 브랜드 매출이 떨어지면서 국내 생산량이 30% 줄고 대신 해외 생산으로 들여오는 물량이 20% 이상 늘었다. 갑피와 저부기술자를 포함한 관리직원 총 30여명이 근무한다. 지난해 월6000~7000족 생산했다. 올해는 국내에서는 평균 5000족 생산한다. 이 공장은 갑피(재단된 가죽을 구두 형태로 접착 봉제하는 작업)와 저부(골에 봉제된 가죽을 씌우고 창을 붙이고 건조하는 작업) 제화기술공은 신발 한 켤레당 각각 6500~6800원 공임을 받는다. 수제화는 갑피와 저부를 합쳐 만들어진다. 작년 신발 한 켤레당 기술자 공임이 총 2000원이 올랐다. 켤레당 공임이 지난해 동기대비 18% 오른셈이다. 수제화 원가(갑피, 저부, 가죽 원가, 관리비 포함)는 평균 4만~5만원선이다. 또 다른 공장 관계자는 “스니커즈와 캐주얼라인은 중국이 강세다 보니 생산 포지션이 많아지고 있다. 공임 단가도 납품가에서 보면 차이가 많이 나면서 브랜드들이 물량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공장·소공인, 퇴직금 소송 패소로 삼중고
수제화의 허리 산업군인 공장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공임 인상에 이어 30여 공장이 퇴직금 소송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 협력공장 30여곳이 잇따라 패소하면서 문을 닫는 공장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한 협력 공장 대표는 “수제화 공장은 3개월간 일감이 없으면 버티기가 힘들다. 1~2월부터 물량이 줄어 공장을 겨우 돌리고 있다”며 “퇴직금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박동희 성동제화협회장은 “민주노총이 개입하면서 협력 공장과 퇴직금 소송을 제기한 기술공이 많이 늘었다. 협력공장 30여 곳이 퇴직금 소송이 휩싸여 있다”며 “올해나 내년에는 공장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부터 탠디, 소다를 상대로 제기한 기술공 퇴직금 청구 소송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에 제화 기술공들은 1차, 2차 협력 공장들을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한 협력 공장 대표는 “수제화 공장들은 3개월만 물량 오더가 없으면 버티지 못한다”며 “퇴직금 소송에 직면한 공장들은 쌓인 임금과 외상대가 밀려 자생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앞으로 도산업체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비수기인 7월에 접어들면 규모가 작은 공장들의 폐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말 성남으로 공장을 옮긴 A사(구두 제조, 납품 및 판매) 대표는 올해 공장 폐업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국내 수제화 공장을 운영하기에 더 이상 생산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유통 판매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꺼번에 오른 공임 인상이 부담스러운데다 1인 소사장인 제화공들의 퇴직금 소송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성수동 지역의 임대료가 오르고 공임도 2017년 대비 공임도 20%이상 오르면서 브랜드 납품 물량은 떨어지고 있어 제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제화 기업 매출은 떨어지고 있고 수제화 원가는 높아지고 품질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두 제조, 브랜드 납품 및 판매를 하는 A 공장은 월 평균 1000족 이상을 해야 총 70여명(제화공, 근무직, 물류)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다. 최근 공임인상과 함께 퇴직금 소송이 잇따르면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생산과 판매, 완제 납품을 하는 A공장은 올해 매출이 30%이상 떨어졌다. A 공장 대표는 “작년 순이익이 2억3000만원 정도다. 최근 퇴직금 소송에 패소하면서 3억원 을 제화기술공에 지불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지연 이자도 20%에 이른다. 앞으로 퇴직금 소송이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회사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정기만 제화지부장은 “브랜드 생산 물량이 줄어든 이유는 소비자가 값싼 신발을 찾기 때문이고 성수동 소규모 수제화 공장 폐업은 수제화 산업의 경기 하락과 맞물린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수동은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공장 건물 임대료가 높아지고 있어 공장들이 성수동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개입해 일감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백화점 수수료가 높아 브랜드와 협력업체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정부기관, 국회, 공정위 등과 함께 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고 전했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 구두류 제조업은 534개에 이른다. 이중 70%가 수제화 핵심기반인 성수동에 몰려 있었다. 특히 브랜드 협력업체를 비롯한 수제화 생산공장 및 가죽을 비롯한 원부자재 업체가 밀집돼 있다. 지방으로 일자리를 찾아간 한 제화기술공은 “공임인상은 작년 민주노총 제화지부가 제화기술공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수제화 업체와 협력공장에 공인 인상을 요구하며 본격화됐다. 그러나 공장들이 폐업으로 이어지면서 기술공의 일하는 터전이 없어졌다. 연장을 내려 놓고 막노동판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공장 사장은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수제화 제품 소비자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향후 몇 년만 지나면 제조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원청과 협력공장, 제화기술공이 협력해도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손재주 손기술이 뛰어나다”며 “시장 현실을 철저하게 반영한 연구를 통해 소공인들이 모여 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질 좋고 가격이 좋은 제품으로 공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