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기 코오롱글로텍 디자인팀 차장 - 디자이너는 ‘브리꼴레르’…필드간 이해관계 조율이 핵심역량

코오롱에 디자인경영 바람 일으킨 3세대 카시트 디자이너

2020-05-24     정기창 기자
2013년 여름, 당시 코오롱그룹 이웅렬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 최고경영자와 시내 모처에서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 해 현대차는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이하 레드닷)’ 5개 부문상을 거머쥐며 성가를 높이던 때라 자연스레 이 주제도 대화속에서 언급됐다. 공교롭게 바로 이 자리에서 이웅렬 회장은 회사 비서실을 통해 계열사인 코오롱글로텍이 당해 레드닷 콘셉트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를 수상한 사실을 전달받았다. 코오롱글로텍의 레드닷 수상은 그룹 역사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이웅렬 회장이 크게 고무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일을 계기로 코오롱그룹에는 디자인경영 바람이 불어 닥쳤다. 2013년 레드닷을 수상한 코오롱글로텍은 이듬해 같은 카시트 소재인 ‘지오닉(GEONIC)’으로 ‘IF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에서도 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코오롱스포츠가 ‘차세대 텐트’로 레드닷 본상을 수상하는 등 그룹 전반에서 빠른 변화와 결실이 맺어졌다. 코오롱글로텍은 레드닷 수상을 계기로 이전 10년간 구애에도 냉담했던 美 크라이슬러에 자동차 시트를 공급할 수 있는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으로 등록돼 거래를 텄다. 연이어 BMW, 랜드로버, 재규어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김민기(40) 코오롱글로텍 디자인팀 차장은 당시 코오롱그룹의 디자인경영에 불을 당긴 최초 주인공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텍스타일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고 2005년 코오롱글로텍에 카시트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카시트 섬유소재 ‘지오닉’은 레드닷을 계기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보통 카시트 원단은 열엠보, 프린트, 염색, 제직 등 여러 공정에서 많은 한계가 있다. 기능성은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공법을 찾아야 했다. 글자나 로고를 볼록하게 돋보이게 하는 효과는 그동안 그라데이션(gradation)이나 음각기법을 사용했는데 양각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새로운 후가공 소재 ‘지오닉’을 개발하게 됐다.

별도의 TF팀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지오닉 육성(育成, 김 차장은 카시트 소재는 ‘레디 투 오더(ready to order)’가 아니라 자동차 컨셉에 맞는 디자인, 품질, 스펙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육성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에 들어갔다. 수상자 통보는 2013년 6월에 받았지만 준비는 약 1년여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코오롱그룹은 전사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많은 변화를 주던 시기라 독립적 팀으로 나서 지오닉을 키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코오롱글로텍은

-왜 레드닷이었나.
“시장에서 검증을 받고 싶었다. 지오닉이라는 소재와 디자인이 시장에서 진짜 판매가 될 제품인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레드닷은 각계 교수, 디자인 랩(Design Lab) 대표자, 유명인사 등이 전문 심사위원으로 나서 정말 시장에서 통할 제품인지 꼼꼼하게 평가한다. 기존 시장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차별화와 상품성이 있는지 다각도로 살펴본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도 컸다.”

-레드닷 수상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
“(마케팅과 브랜드 이미지 향상 측면에서) 꽤 효율적이었다. 수상 작품을 보고 많은 곳들이 관심을 가졌다. 이전 10년간 우리는 미국 크라이슬러 문을 두드렸지만 거래가 안됐다. 레드닷 수상을 계기로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에 등록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당시 크라이슬러 램1800 모델에 제품이 들어갔다.

‘지오닉’

이는 지오닉 소재뿐만 아니라 그 밑에 들어가는 베이스원단까지 팔 수 있는 루트를 뚫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쇄적으로 크라이슬러 관계사인 피아트(FIAT)를 비롯 BMW, 랜드로버, 재규어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도 미팅을 가졌다. 지오닉은 가격이 높아 국내에서는 소화하기 쉽지 않아 해외시장 먼저 공략하는 전략을 가져갔다.”

-카시트 디자이너 세계가 궁금하다.
“패션디자인이 고객의 선택에 대한 기다림, 또는 트렌드를 좇는 속성이 있다면 우리는 정반대다. 대표 브랜드나 디자인이 없다. 내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사 물건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고객이 원하는 컨셉에 맞게 여러 부품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제안해야 한다.

직물의 경우 내마모, 내광, 내열, 내습, 내한 등 모든 물성을 감안하고 스펙에 맞춰 가격을 내야 한다. 원단에서 후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디자이너가 설계한다. 패션에서는 통상 개발팀이 하지만 카시트에서는 디자이너 영역이다. 동일한 제품이 차종이나 납품처가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개발에 들어간다. 기아차 니로에 납품된 시트가 스토닉이나 K7에 들어갈 수 없다. 차마다 컨셉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객사들은 끊임없이 차별화 소재를 요구하면서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경향을 보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요구들을 충족시키다 보면 거의 과학자가 돼야한다.”

-디자이너의 핵심 롤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를) 어디에 놓고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스스로를 간극조정자 또는 사이전문가 즉, 브리꼴레르(bricoleur)라고 말한다. 기술과 그림을 어떻게 연결할지, 또 판매와 아트를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한다. 전문성을 갖추고 이 업종간, 서로 다른 필드(field)간, 양쪽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설득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이질적이고 다른 부분을 교배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결국 창의력이라고 본다. 운동선수가 음식점하고 의사가 기사 쓰고…자기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이 업종과 결합하면 새로운 무엇이 나올 수 있다. 그런 정도의 지식이나 특기가 없으면 디자이너는 어느 순간 감각이 떨어지고 그 순간이 사양길로 들어가는 시점이다. 기능과 감성 모두 중요해지는 시대다. 카시트의 경우 MS(Material Specification)를 통과하면 다음에는 ES(Emotional Specification)를 맞춰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소재로서 인정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