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은 전방 사장

2001-03-13     한국섬유신문
면 방적 분야 최고를 위한 닻을 높이 올리고 21세기 벽 두에 전방이 힘차게 떠오르고 있다. 지난 1950년대 초 6.25동란 직후 함께 설립된 전방은 오랜 정통 속에 굴 림하고 있는 구방의 대표적 기업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전방 호는 이제 새 천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제 시하며 김 홍은 사장을 단장으로 더욱 활기차게 솟아오 르고 있다. ‘면방 기업은 보수적이다’는 명제가 성립될 정도로 고지식함으로 무장한 업종이 면방이다. 이러한 면방에 발을 들여놓은 이 회사 김 홍은 사장은 코오롱과 효성 을 두루 거친 전문경영인으로 판단력과 업무추진력이 뛰어난 합리적이면서도 명석한 사고력을 가진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김홍은 사장은 입사당시 면방 기업이 보수적이 다는 말은 익히 들어 온 바지만 내부적으로만 생각하는 면과 수동적인 행동양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서 의식구조의 개혁이 절실함을 느꼈다. 또한 방적 설 비 면에서는 감가 상각이 훨씬 지난 오래된 기종들이 대부분이고 설비과다 상태에서 공장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어 구조조정이 시급한 시기였다. 신임사장으로 방적 시설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엄청 난 투자가 있어야 되는 등 금융적인 면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회장단의 격려로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 다. 현실적으로 업무 추진에 보다 합리적인 운영의 묘 를 발휘했으며 천안공장의 최신설비 가동에는 지금도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전후한 원면가 폭등은 공장운영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으며 연거푸 찾아온 어려움은 IMF 관리체제라는 한국경제사상 초유의 긴장을 해야만 했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제 입사 10년을 맞 는 김 홍은 사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지나온 길이 가시밭길이었다고 말하기 보다 앞으로 전개될 새 천년 에 더욱 비중을 실고 있다. 김 사장은 정보화 지식기반 사업화가 가속화 될 수록 섬유업은 인류문명을 꽃피울 아름다운 꽃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하는 섬유사업은 분명한 플러스 게임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러한 비젼을 가진 전방은 지난해 상당 규모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10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려 면방업계 상당한 기대주로 급부상 했다. 이것은 정확한 정보 분 석력과 예리한 판단력, 추진력이 어우러진 김 사장의 타고난 경영능력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전방 김 홍은 사장은 말한다. “이제는 어떠한 어려움 과 시련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쌓았다” 이것은 입체적 사고로 전환한, 적극적인 마인드의 그를 따르는 “전방 맨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김 사장님은 화섬 분야에 몸담은 분으로 면방에 입사 했을 당시 느낌이 독특했을 것으로 봅니다. 구체적으로 지적해 본다면. ▲ 1991년 당시 전방은 방적 24만 7천 추에 직기 1400 대와 염색시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면방 특유의 경 기 싸이클에 소홀하게 순응해 오면서 영업을 하고 있었 으며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면방산업은 관세 혜택과 정부로비에 의존하면서 업체별 자체의 경쟁력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1990년 대 초기에는 국가적으로 수입자유화와 여행자유화가 물 결치면서 급변하는 시대상황이었는데도 거의 순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자체적인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가 필수과제로 떠오르고 있었습 니다. 우선 방적설비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추수를 줄이는 형편 에 있었습니다. 영국은 특수하게 방적설비를 모두 스크 랩 전혀 생산하지 않고 전량 해외에서 생산된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고. 독일은 중간정도로 줄여 자구 노력하고 있으며 이태리 같은 경우는 최신패션소재산업 강국으로 잘 운영토록 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도 제조 경쟁력은 상실했으나 끈질기게 노력하 면서 임금과 제품판매에 걸맞는 생산성에서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일본도 과거 700만추이던 것을 현재 350만 추로 줄여 성장하는데 매진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당시 국내도 370만추 정도였었으나 1993년부터 법적 설 비 추수를 줄여나가고 있었습니다. 구 설비는 폐기하거 나 해외 이전하는 데 관심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전방은 당시 인천공장을 팔고 천안이나 시흥공장으로 설비를 이동시키고 신 설비를 도입,수입품과 경쟁 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최선의 길로 선택했습니 다. 당시 셔틀 직기는 완전히 폐기하고 자동직기 200대 를 갖춰, 과거 1400대와 걸맞는 경쟁체제로 갔습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정에서도 면방 업계의 고루하지만 근 본적인 장점을 살려나가면서 영업에서는 소극적이고 부 정적인 풍토를 바꿔나갔습니다. 화섬 면방을 비교해보 면 역동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전면대응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