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문 닫는 수제화공장…성수동이 무너진다
미소페 주력 3개 협력공장 폐업, 부자재업체들 이중 피해
최악으로 치닫는 경기와 경영환경 악화가 원인
2020-11-15 정정숙 기자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인솔 한쌍 가격이 1500~2000원 중반이다. 수제화 완제품 생산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올해 못 받은 돈만 1억원에 가깝다. 10여명이 넘는 직원 인건비와 자재값을 줘야하는데 우리도 못 주고 있다. 연쇄적으로 문을 닫는 부자재업체가 생길 수 있다. ”(A 인솔 업체)
‘수제화의 메카’ 성수동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수제화 완제품 공장 폐업 행렬이 줄을 잇고 있어 수제화산업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연쇄 부도가 날 가능성에 부자재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미소페의 주력 협력(하청)공장인 엘케이콜렉션은 10월말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로서 지난해 12월말부터 수제화 브랜드 미소페(원청)에 납품을 하던 3개의 주력 협력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 10월말~11월 현재 홈쇼핑과 백화점 브랜드 제품 오더로 운영되는 3~4개 공장도 잇따라 문을 닫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공장은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50여명 이상 직원들이 근무하던 곳이다. 1년 전만 해도 하루 300족~1000족 이상 생산했다. 성수동에서 오더량이 가장 많았던 공장들이다.
공장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각각 6개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비수기가 길어지고 있다”며 “미소페 오더 물량이 줄면서 경영이 악화돼 폐업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한때 월 1만족 이상 오더를 받았다.
경기침체로 수제화 시장이 어려워졌고 민주노총이 촉발한 2018년 공임(한 컬레당 갑피와 저부 기술자가 받는 가격) 인상의 타격이 있었다”며 “올해 들어 월 2000족을 겨우 생산했다”고 전했다.
홈쇼핑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연이어 폐업에 직면해 있다. 롯데홈쇼핑에서 구두 브랜드를 판매하는 B회사의 제품을 오더받는 C공장도 11월 초 가동을 멈췄다. B회사 오더량이 줄면서 다른 D협력공장도 문을 닫게 됐다.
이로 인해 부자재 업체들은 이중 피해를 입고 있다. 부자재업체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90%까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남아있는 공장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부도가 일상화되자 현금만 받겠다는 부자재업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최악으로 치닫는 경기 부진과 날로 가중되는 경영 환경 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성수동 기반의 미소페는 올해 백화점 매출이 전년대비 30% 이상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 협력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중국, 이탈리아 등의 해외 생산 제품이 늘고 있는 추세다. 제화 기업들은 성수동을 떠나 중국 등 해외 수입 물량은 늘리고 원가가 다소 저렴한 성남, 부산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수제화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제화공의 공임 인상과 퇴직금 소송이 이어지면서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공임은 올라갔지만 제품 납품가는 떨어져 공장이 문을 닫는 사태가 생겼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신발 한 켤레 공임이 평균 2600원(갑피와 저부 합산) 올리고 원청에서 완제품 납품가는 떨어뜨렸다”며 “이로 인해 재하청 공장은 피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수제화 제조기업들은 성수동 수제화 기반이 흔들리는 이유가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기업의 해외 수입 물량 확대, 민주노총 소속 제화공의 공임 인상에 따른 수제화 경쟁력 약화, 카페가 밀려오면서 임대료가 높아져 공장이 쫓겨나는 상승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등을 꼽고 있다.
한 업체 대표는 “성수동에서도 트렌디한 스니커즈와 난이도 높은 프리미엄 수제화 생산 체제를 갖춰야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수동 수제화 발전을 위해서는 디자인, R&D, 브랜딩을 높여 산업을 키워야한다”며 “성수동 주력 브랜드사와 협력해 구심체가 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고 장인이 아니라 장인정신을 키워야한다”고 전했다.
성수동은 전국 최대 수제화제조업 밀집지역이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 구두류 제조업은 534개에 이른다. 이중 70%가 수제화 핵심기반인 성수동에 몰려 있다. 업계는 부자재를 비롯한 완제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가 300여개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