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3일 탠디 사태(5개 하청업체 도급 제화공인 98명 파업)가 촉발된 이후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수제화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일감은 부족한데 공임은 올라갔다. 제화 기술자의 퇴직금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원청에서 지급하는 원가는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생산공장들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업체는 중국, 이탈리아 등 해외생산 제품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국내 수제화산업의 현실을 짚어보고 제조산업 활성화를 위한 산업 발전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정리=정정숙 기자 jjs@ayzau.com
/사진= 최정윤 기자 / jychoi12@ayzau.com
▶김영춘(사회) = 국내 수제화산업은 정장구두에서 운동화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소비 트렌드 변화와 해외 SPA 브랜드 잡화 상품군 확대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감은 부족한데 공임(민주노총에 가입된 제화공들이 공임 인상)은 올라가고 원청에서 주는 원가는 줄어들고 있다. 제화기술공은 공장을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신발이 많이 유통되고 있어 공장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원부자재부터 공장, 판매장 전 스트림이 있는 성수동 지역은 땅값 상승여파와 경영악화로 업체들이 지역을 떠나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우리 수제화업계가 처한 현실과 수제화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달라.
인건비 상승, 퇴직금 요구…원청 원가는 그대로
▶강화석 = 제화공 공임 인상 이후 생산공장을 상대로 한 퇴직금 소송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구두 공장은 13년 전쯤 시작했다. 작년 민주노총에 가입된 제화기술공의 공임 인상과 퇴직금 요구 시위가 한창 일 때 공장 문을 닫으려고 했다.
제화기술공은 1인 소사장제이면서 도급제다. 사장들의 동의없이 자유롭게 공장을 옮겨다니기도 한다. 3년 전만 해도 고용노동청은 제화공을 1인 사업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대법원 판례가 퇴직금을 줘야 하는 쪽으로 판결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청에서도 합의(공장과 제화기술자간)를 권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한철 = 탠디와 소다에 이어 성수동에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업체 제화공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장에서 일감을 줬고 공장 안에서 일을 하는 건 종속 관계라고 본 것이다. 기술자들이 소송에서 이긴다할지라도 제화공 개인이 받아가는 돈은 적었다. 오히려 점점 공장은 없어지고 일감 오더량이 해외로 빠지고 있다. 국내 중소업체가 성장하기 더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김영춘 = 공장 입장에서 보면 퇴직금 문제는 숙제로 남아있다. 그럼 제화공과 공장들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나.
▶김영신 = 공장은 합의점을 찾았다. 이전 퇴직금(위로금)이 있어서 그것으로 정산을 끝냈다. 앞으로 발생하는 퇴직금은 공임 일부와 위로금을 합쳐 금액을 맞추는 데 합의했다. 이는 제조 공장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금 탠디 내수 오더가 몇 퍼센트 줄었나.
▶강화석 = 우리 공장은 작년과 비교하면 20~30% 줄었다. 판매 부진과 해외 수입 물량이 늘어서일 것이라 추측한다.
열악한 생산구조 변함없고 해외 수입물량만 증가
▶김영신 = 탠디는 작년까지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고수하다가 올해부터 해외 수입물량을 늘렸다. 소다, 미소페는 올해 해외물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민주노총이 성수동에 입성하면서 노동자의 권리 피켓을 든 결과물이다.
공임과 퇴직금을 못 맞춘 공장들은 사라졌다. 남아있는 공장들은 도급자(제화공)에 공임 인상 가격을 맞춰준다. 원청에서는 이전 원가 그대로 유지하거나 하향조정하면서 가격 후려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공장은 이같은 현실에 피폐해지고 있다.
수제화 생산구조가 개선돼야 하는데 열악한 구조는 그대로다. 브랜드들은 상품 가격을 원가에서 3~4배 이상 설정해놓는다. 소비자가격에서 역으로 납품원가를 계산해 협력공장에 요청하는 구조다.
원청(브랜드사)은 백화점에게 유통 수수료를 40%이상 내 이익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노동인력에 대한 법적인 처우가 강화됐다. 완제 업체는 최저 임금과 법정 근로시간을 지켜주고 제화공(도급자) 퇴직금도 보장해주면서 공장을 운영하기는 어렵다.
▶한철 = 패션제조업 폐업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제화기술공 공임이 오르고 퇴직금 소송이 많아지면서부터다. 제화공들이 일부 퇴직금을 받았지만 구두산업 전체적으로 손해를 봤다. 향후 3년간 국내 전체 팔리는 신발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국내 생산 신발은 줄고 중국, 베트남, 미얀마 등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에서 만든다. 국내 인건비 비중이 높아 경쟁력이 없어 해외로 나간다. 이는 구두 뿐만 아니라 의류, 가방도 마찬가지다.
▶김영춘 = 자생력을 갖춘 특별한 공장이나 해외 소싱력이 뛰어난 곳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장이 적자를 내고 있다.
▶한철 = 동대문에서 납품을 하는 우리 공장도 작년대비 40% 줄었다. 원부자재업체 사장들도 30~40% 줄었다고 말한다.
▶김영춘 = 제화기술공은 60대가 많다. 제화 인력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가 이미 지났다. 작년 12월은 성수동에 원청 오더가 거의 없었다. 2~3년 전만 해도 부츠를 만들기에 바빴다. 갑피 일감을 처리할 인력이 없어 난리가 났다. 성수 지역에서 비싼 임대료를 내고 전처럼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월 600만원 임대료를 내야 하는 곳도 있다.
▶강화석 = 작년 탠디 사태 때 제화기술공과 서로 협의 여지가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한철 = 이대로 가면 구두제조업체가 빠른 상태로 없어져 갈 것이다. 아웃소싱은 늘리고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 패션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중이다. 농어민 보조금은 많은 반면 패션쪽 보조금은 거의 없다. 우리 수제화 공장은 도급자인 제화공과 근로자를 합치면 대력 30여명이 일한다. 기술자는 나이들어 은퇴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이 사람들이 퇴직하면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 농어민처럼 수제화공장도 지원이 필요하다.
▶김영신 = 길거리에서 식당과 작은 매장이 문을 닫고 있다. 경쟁력 없는 오프라인 매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성수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내 브랜드사 매출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동대문은 한때 전국에 신발을 팔았다. 지금은 물량이 많이 줄었다. 온라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소비 패턴 변화를 읽어야한다. 우리 스스로 자생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강력한 소통창구 협회 출범 돼야
▶김영춘 = 수제화산업은 노동집약도가 높은 산업이다. 자구책이나 경쟁력을 강화할 대책이 있다면.
▶김영신 = 성수동에 4개 정도 협회가 있지만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어 유명무실하다. 실제로는 극소수 회원만 가입돼 있다.
▶김영춘 = 협회가 정부와 가교역할을 해야한다. 스마트앵커와 수제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전 스트림이 접목돼야한다. 서울시나 성동구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예산이 집행되도록 노력해야한다.
▶김영신 = 수제화는 기초공사가 제대로 안 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삼삼오오 모여 협회를 만들고 영업만 할뿐 중심 뼈대가 없다. 정부는 어디에 예산을 썼는지 알 수 없다. 자생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지자체가 공적인 협회나 단체를 만들어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협단체는 공공기관이나 정부와 소통하고 소상공인(공장, 제화공)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제대로 소통된다면 구두공장과 제화기술공들이 다 협력할 것이다.
▶한철 = 제화기술공이 민노총에 가입하면서 공임만 올렸다. 산업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큰 업체 물량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산업이 점점 쪼그라들게 됐다.
▶강화석 = 유통업체는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물건을 적게 들여와야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중국 수입 물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 수입 제품은 소비자 판매반응에 따라 바로 물량 투입이 어려워 재고가 쌓이기 쉽다. 반면 국내 생산 제품은 반응 생산이 가능하다. 브랜드사가 인식을 바꿔 국내 생산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공장운영도 해 볼 만하다.
▶김영신 = 앞으로 수제화는 고부가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저단가의 대량생산 체제는 해외시장에 내줘야한다. 국내 구조에서는 인건비가 올라 원가를 맞추기 어렵다. 60~70년대 명동이 수제화거리로 명성을 떨쳤다. 옛 명동 양화점처럼 제조와 소비자가 만나 이뤄지는 직거래의 소규모 생산 체제로 가야한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저렴한 가격과 특화된 제화제법을 접목한 구두를 팔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국내 수제화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성수동 연무장길 ‘더젠틀박’이 좋은 예다. 더젠틀박은 공장과 소비자가 직접 연결된 매장이다.
특수 수제화 제법으로 만든 구두가 10만원 후반대다. 브랜드에서 40~50만원에 판다. 더젠틀박 사장이 직접 패턴을 내고 갑피를 해 신발을 만든다. 이 같은 모범 사례가 몇 군데 생기고 선례가 되면 수제화 메인거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향후 수제화 산업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몇 년 전에 서울을 밀라노로 만들겠다고 했다. 환영한 만한 일이었다. 이후 성수역 교각 밑에 수제화 매장이 지어졌지만 제대로 된 수제화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때 소비자가 토요일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찾아왔다.
삼삼오오 찾은 4050대 여성 소비자는 신발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어디느냐 물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를 소개해 줘야 할지 고민한다. 정부가 체계적으로 이 산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투명하게 운영했어야 한다. 정책사업 홍보를 제대로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철 = 한국 구두산업은 앞으로 20년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10년 된 우리공장 제화기술공은 50대 후반이 됐다. 건강하다면 70대 중후반까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양화점처럼 매장이 고급화되면 젊은 사람들이 제화기술을 배우고 운영할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생산 제조기반의 공장들과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모바일 쇼핑몰을 지원해 주면 좋을 거 같다. 공장 직영 플랫폼이 필요하다. 홍보를 하면 중소기업들이 플랫폼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
▶김영신 = 조금 다른 의견이 있다. 일본협회는 원청, 소비자, 생산자 중간에서 협회가 영향력을 발휘해 갑·을·병·정이 제대로 원가와 공임을 받을 수 있도록 협의한다. 초기 플랫폼은 관공서가 만들어 산업이 살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 주면 협회가 관리해야 한다.
협회는 제화기술공, 공장, 디자이너 등 전 스트림이 모인 단체로 정부와 소통해야한다. 플랫폼 안에서 협회회원들이 자율성 있게 운영해야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김영춘 = 지금 구상하는 스마트앵커산업도 실효성 있는 연구에서 시작돼야 한다. 국내 수제화산업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 산업 구조에 맞는 플랫폼 산업이 돼 지지대 역할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