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동대문 시장, ‘위드인24’로 충분한가?

신종코로나 사태에 이목 쏠린 지금 제일평화시장 작년 화재로 716억원 피해 지주는 입점 상인과 상생 노력 없어 힘 없는 상인들만 홀로 고군분투 정부와 지자체 중재에 기대 모아

2020-02-21     정기창 기자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 이목이 일제히 신종코로나 사태에 집중돼 있다. 그 사이 수년간 지속된 경기불황에 고초를 겪는 중소 상공인들은 소외된 사각지대에 서 있다. 중국 고객이 급감하고 내수 경제 동력마저 말라버린 상황에서 국내 최대 의류패션 집적지 동대문 시장 상인들은 고립무원 처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제일평화시장(이하 제평)은 작년 9월 화재로 소방청 추산 716억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건물을 덮친 화마에 일터를 날린 상인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거리 영업에 이어 굿모닝시티, 맥스타일 등 공실이 있는 주변 상가에 흩어져 장사하고 있다. 제평 관리단은 6월까지 원상복구를 끝내고 정상영업 한다는 방침이지만 그렇더라도 남아 있는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관할 지역 중구청은 작년 11월 피해 상인 구제를 위해 제평 측에 40억원 지원 의사를 밝혔다. 1년간 상인 임대료 면제와 함께 향후 3년간 임대료 동결 내지는 인하 조건을 내걸었다. 합의는 무산됐다. 제평 관리단 측은 셈법이 달랐다. 구청 지원을 받을 경우 향후 월세를 받지 못하는 기대 손익을 감안하면 지주(매장 소유주) 1인당 부담은 2400여만원이 된다. 그러나 지원금을 받지 않고 갹출하면 이 부담금은 대략 1200여 만원으로 줄어든다. 줄어든 만큼의 돈은 세 들어 장사하는 상인들 월세 부담으로 돌아간다. 화재로 시즌 장사를 망치고 옷을 태워 먹은 상인 피해액은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넘어간다. 상인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제평 상인은 “화재 후 DDP 앞에서 추운 노점 천막 장사를 할 때도 (관리단 측이) 따뜻한 물 한잔은커녕 생수 한통도 놔준 적이 없다. 중구청 피해 지원은 상인들 간 입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입장을 대변해야 할 상인회나 연합회는 지주단과 이해관계가 같아 우리 처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인회장 또는 임원은 대부분 지주이거나 임대권(향후 10~20년간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로 제평은 점포당 1~3억원 수준으로 알려짐)을 가진 사람이라 관리단에 상인 입장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상인은 “(관리단이) 스스로 임대료를 깎아 줄 움직임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변 상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제평 상인 상당수는 돌아가더라도 ‘양다리’를 걸칠 것으로 알려졌다. 정 떨어졌으니 다른 곳에 점포를 열어 두고 여차하면 제평을 뜨겠다는 얘기다. 이제 상인들은 시장 자율기능에 맡기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지자체나 정부가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4월 동대문 시장 활성화 1호 정책으로 ‘위드인24’를 내 놨다. 작년 예산만 27억인데 정작 동대문 상인이나 원부자재 및 봉제 업체가 효과를 실감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정부는 올해 남성 맞춤 정장을 파는 제2호 매장을 내겠다고 한다. 동대문에는 위드인24뿐만 아니라 K패션 쇼룸 ‘르돔(LEDOME)’도 있다. 역시 정부가 연 20억 가까운 돈을 지원해 운영되고 있다. 시장은 돈을 투입해 단순히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살릴 수 없다. 동대문 시장은 원부자재, 샘플, 원단, 봉제까지 일괄 생산하는 인프라로 세계 시장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의류패션 집적지로 거듭났다. 이보다 앞선 핵심 경쟁력은 시대 흐름을 읽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상인들의 소프트 파워다. 정책은 현장을 기반으로 수립돼야 제대로 돌아가고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디에 시설 하나 내 주고 돈 생색을 내면 관변인들만 눈먼 돈을 따먹게 된다. 미래는 소프트 파워 시대다. 자동차 전기 전자 등 거대 기업들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FAANG 기업들에 주도권을 내 줬다. AI, 플랫폼 등 소프트 파워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이들 기업이 경제 전면에 나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육성 정책은 우리가 놓을 수 없는 핵심 경쟁력이다. 그럼에도 소재보다는 디자인의 부가가치가 더 크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상인 계층이 몰락하면 동대문 시장의 경쟁력은 그 기반을 잃게 된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동대문 시장 상인들은 정부 지원에 기대 살아남은 약골이 아니다. 무한 경쟁 속에 치열한 노력으로 자생적 생태계를 일군 산업의 뿌리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쯤, 날 따뜻한 6월이 오기 전 홀로 고군분투하는 제평 상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