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박정실 대표 - “패러글라이딩 캐노피로 업사이클 가방 만들어요”

요트 돛·글램핑 텐트, 레저스포츠 소재로 다시 태어난 가방들

2021-05-22     최정윤 기자

-옷이 아닌 액세서리를 업사이클링하는 이유?
“대학원생이었을 때 박사과정 논문을 작성하던 친구가 제 옷장을 연구대상으로 정했어요. 옷장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내 일주일에 몇 번 입는지 확인했습니다. 집요하게 체크해보니 한 번만 입은 옷이 대부분이고, 자주 입는 옷은 10년 넘게 입은 옷이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 이후로 오래 입을 옷 몇 벌만 사서 입어요. 지금 걸친 옷도 스티브 잡스처럼 단순히 돌려 입는 옷이예요.

지속가능 소비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모든 디자이너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재단할 때 자투리 천을 남기지 않도록 계획하면 됩니다. 폴리원단을 재봉하는 실을 폴리소재로 제작해 수명이 끝나면 한 번에 녹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원단을 만들 때 분해되기 쉽도록 실을 짜는 방법을 달리 할 수도 있죠. 코오롱FnC 래코드에서 리사이클링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업사이클링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됐습니다. 액세서리 업사이클러 입장에서 액세서리는 사이즈와 계절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재고를 전혀 남기지 않는 제품군이죠. 옷보다 액세서리가 환경을 보호하는데 더 효율적입니다.“

-레저스포츠 소재 업사이클링은 독특한 시도다. 계기는?
“평소에 레저스포츠를 즐기는 편입니다. 지난해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는데, 캐노피 원단 촉감이 정말 좋더라고요. 기분좋게 바스락대고 가볍습니다. 놀랍게도 레저스포츠용 제품은 닳고 나면 그대로 방치됐다가 버려진다고 해요. 바람이나 파도를 막는 기능은 닳아 사라졌더라도, 가방으로 쓰기에는 적합해요. 패러글라이딩장과 요트장마다 직접 방문해 버릴 원단을 제게 달라고 했죠.

1년 정도 쓰고 있는데, 바삭한 촉감이 조금 부드러워졌을 뿐입니다. 기성 가방은 오버랩처럼 가볍고 튼튼한 천을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기능성이 뛰어난 소재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패러글라이딩 원단은 가볍고 질기기 때문에 장바구니로 만들기 좋아요. 코로나19사태로 미뤄졌지만, 기회가 된다면 기업 장바구니 콜라보레이션도 추진하고 싶어요. 오버랩이 추구하는 업사이클링은 소비자와 공급자, 제작자가 함께 순환 고리를 만들고 직접 참가하는 방식입니다. 순환 고리에 뛰어든 사람은 누구라도 적극적으로 더 나은 업사이클링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공급자가 업사이클링 제품 아이디어를 줄 수 있고, 소비자가 새로운 공급처를 연결해줄 수 있죠.
업사이클링은 물리적 재활용입니다. 2020년 리사이클 PET칩으로 옷이나 가방을 뽑아내는 기업은 많아요. 대기업은 전체 생산물량의 30%를 리사이클 소재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무래도 물량이 많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하는데 큰 영향을 줍니다. 아직 국내에서 영세기업이 환경에 도움을 주는 화학적 재활용 제품을 만들 방법은 없어요. 대기업처럼 활용할 수 있는 제조기반이 드물죠. 오버랩을 세우면서 물리적 재활용 제품은 대기업만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원단이 또다른 바람으로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나더’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원단은 ‘어나더 하이(Another High)’, 요트 돛 원단은 ‘어나더 웨이브(Another Wave)’, 캠핑 텐트 원단은 ‘어나더 마운틴(Another Mountain)’으로 이름 붙였어요. 더 많은 사람이 쓰길 바랐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 수주회와 팝업스토어로 바이어와 대중에 노출되는 빈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소비’에 관심 갖도록 할 전략은?
“모든 사람이 매일 환경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확실히 자연을 보호할 수 있겠죠. 소비자 인식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소비자가 친환경 소비를 인식하면, 기업이 대중 인식에 맞게 바뀌고, 대기업이 바뀌면 영세 기업과 관련 제조업이 모두 변화해요. 당장 생산공장에 가서 ‘왜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보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지금껏 친환경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선례를 보면, 대중이 좋아할 ‘디자인’과 친환경 브랜드라는 ‘이미지’ 모두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일단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눈길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게다가 그 제품이 ‘친환경’ 가치도 추구한다니!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더라고요. 요트 돛으로 마드는 어나더 웨이브는 창고 속 돛이었을 때 밴 바다 냄새와 파도와 부딪히며 생긴 얼룩이 특징입니다. 맡아보면 고유의 냄새가 있어요. 업사이클링 공감대에 맞게 파도의 흔적을 남겨둘지, 새 원단처럼 몇 번 더 세탁할지 고민입니다. 업사이클링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이 생기면 분명 더 많은 디자이너가 업사이클링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패러글라이딩 캐노피 원단을 예로 들면,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자투리 원단이 없도록 손으로 재단했습니다. 레저스포츠 원단은 롤 형태의 기존 규격 원단이 아니라 커다란 천이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하나 손으로 재고 잘랐습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가방 원단은 모양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됩니다. 한 장 한 장 공들여 잘라야 하죠. 공장 측에서 이 방법으로는 안되겠다고 조언해줬습니다. 지금은 사각형으로 먼저 자르고, 철형으로 한 번에 찍어냅니다. 매일 더 쉬운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