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섬산련 회장추대위는 도전을 하려는가, 도박을 하려는가
섬산련 14일 임시 총회 열고 차기 회장 논의
5인 추대위에 묻는다
위기 헤쳐 나갈 준비된 지도자 없나
업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은 없나
이미 검증된 기업인이 정말 없나
2021-07-13 정기창 기자
모험(冒險):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도전(挑戰):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도박(賭博): 돈이나 재물을 걸고 서로 내기를 하는 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낱말 뜻이다.
사전적 정의는 이렇지만 이보다는 비유적 의미가 더 와 닿는다. 모험과 도전은 어려운 상황에 맞서 싸우는 기상을 나타내고자 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다. 도박은 요행수를 바라고 위험한 일에 손을 댄다는 비유적 의미로 더 쉽게 이해된다.
지금 한국섬유패션산업은 코로나19가 불러온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모험과 도전을 떠올린 이유다. 이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누군가는 앞에 서서 받아들이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고통 감내를 주문하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을 준비가 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3년간 한국 섬유패션산업을 이끌어갈 수장을 결정하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임시총회가 14일 열린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심사숙고 끝에 5인 추대위가 차기 회장 추대를 결정하는 자리로 알고 있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 민은기 회장이 섬산련 회장직 수락을 거부함에 따라 1차 합의는 불발됐다.
그런데 이후 차기 회장 추대를 둘러싸고 흘러나오는 풍문을 들어보면 그 모양새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영 딴판으로 돌아간다. 5인 추대위가 최소한의 권위와 전문성도 없이 평판과 명성에만 의지해 이 난국을 쉽게 넘어가려는 모습이 보여서다. 현재 거론되는 인물들은 모두 업계를 대표하는 훌륭한 경영인임에는 틀림없다.
기업의 국적, 오너 리스크 같은 문제는 사소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넘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이들 기업인은 누구나 닮고 싶은 경영의 귀재이면서 인품 역시 업계 첫 손 꼽을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이 분들이 회장직을 수락한다면 오히려 환영하고 감사할 일이다.
단, 이 중차대한 결정에 앞서 추대위 의사 과정에 몇 가지 재고를 요청하고자 한다. 첫째,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준비가 된 지도자가 없는지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둘째,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업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없는지 또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셋째, 그렇다면 이미 검증된 인물이 정말 이 섬유패션업계에 없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기자가 과문(寡聞)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업계에 인물이 그렇게 없지는 않다. 이미 수년간 주요 단체를 이끌며 자기 능력을 검증받은 기업인이 있고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글로벌 경영인도 여럿 있다. 과연 업계와 소통하고, 산업 발전에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준비된 인물이, 추대위 5인의 눈에만 띄지 않는 것인가.
추대위 의사결정과정을 존중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수차례 지적했듯 합리적 논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 되서는 안된다.
2014년 8월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섬산련 회장에 선출되는 과정에서 업계가 이견없이 추대위 결정을 수용한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당시 차기 섬산련 회장 후보자들은 향후 업계를 이끌어갈 청사진을 서류로서 증명하고 이를 평가받았다.
성기학 회장에게는 이 과정이 생략됐지만 그보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후보자를 평가하고 알아볼 수 있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업계 의견이 상당부분 수렴됐다. 물론 회장 선출을 두고 분출된 업계 분열을 하루빨리 잠재워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지금 현재 섬산련 차기 회장 5인 추대위는 2014년 당시와 비교하면 제 몫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기학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 정신을 강조하는 기업인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뉴노멀(New Normal)이 새로운 표준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이 때, 더욱 강조되는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성기학 회장이 추축이 된 현 추대위는 밀실에 모여 ‘그들’만의 의견을 수렴하는 임의 기구로 전락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에 이어 도박을 떠올린 이유다. 도박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추대위 의사결정이 들려온 과정에는 예측성이 전혀 없었다. 과연 추대위는 지금까지의 의사결정을 갖고 제3자를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