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매출은 주중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한 달에 두 번을 쉬면 전체 매출의 10~15%가 날아간다. 이로 인한 손해액은 기업경영 악화로 이어져 연간 순이익이 사라지는 타격을 받는다. ”(편집샵 운영 기업 대표)
“식품이 많은 전통시장과 패션이 특화된 백화점 및 복합쇼핑몰은 상품 유사성과 고객 니즈가 완전히 다르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는 백화점이 쉰다고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비제바노 황규명 대표)
‘백화점·복합쇼핑몰 월 2회 공휴일 의무 휴업’규정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돼 패션업계와 학계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패션산업협회(회장 한준석)은 “백화점·복합쇼핑몰 의무 휴업 개정안이 시행되면 패션산업 및 연관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강력히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협회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및 한국섬유수출입협회와 힘을 합쳐 500여 업체 서명을 오는 14일까지 받아 국회 및 관련 기관에 재검토를 요청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20여건에 이른다.
이중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준대규모점포, 복합쇼핑몰, 아울렛, 백화점, 전문점을 매월 2회 의무휴업하고 휴업일은 공휴일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56만 소상공인 생업에 큰 타격
패션업계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코로나 19 확산 사태로 어려운 기업들과 소상공인 56만명 종사자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동시에 제조, 유통 등 연관 산업의 연쇄 침체가 예상된다. 패션산업은 3만개 사업에 16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관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21만개 사업체와 56만명의 종사자를 견인하는 주요 기간산업이다. 종사자의 90% 이상은 10인 미만의 중소상공인이다.
한국패션협회는 반대 서명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내수부진이 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더디게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조치로 판매활동이 제한 받으면 경기가 냉각돼 국가 경제 회복이 더욱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업을 비롯한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백화점·복합쇼핑몰에 입점된 브랜드사와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개별사업자인 점장들은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화점과 아울렛 입점 매장은 개별사업자인 소사장제 점주가 2~5명 직원을 두고 운영한다. 점주는 브랜드사에서 판매액의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은 대부분 소상공인에 속한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내 80% 이상 점포가 소사장제로 운영된다.
70여 매장을 운영하는 패션업체는 토요일 매출이 주중대비 4배 이상 높은 4억 5000만여원에 달한다. 60여개 편집샵을 운영하는 또 다른 기업은 공휴일 하루 매출이 8억원이다. 월 2회 공휴일 휴무를 할 경우 한달에 16억원이 줄어들고 이는 전체 매출의 10~15%에 해당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소다 점장은 “코로나 19가 확산돼 소비심리가 줄어들면서 직원 1명을 이미 내보냈다. 임시 휴업일이 공휴일로 2회 지정된다면 매출이 높은 A급 매장도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휴무일을 평일로 한다면 직원들이 워라벨을 즐길 수 있어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공휴일 하루 매장 문을 닫는 것은 평일 3일을 쉬는 것과 같다”고 공휴일 휴무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패션산업협회는 연간 76조원에 달하는 패션 소매시장은 섬유소재와 제조, 유통, 물류 등 연관산업을 이끌고 있어 패션산업 침체는 여타 산업의 연쇄 침체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법안 제정을 위한 논리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한국패션산업협회는 “전통시장과 복합쇼핑몰은 고객의 구매 품목이 많이 달라 상호간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며 개정법률안을 재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7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모 패션기업 임원은 “유통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만들어진 법안이다. 명동신세계백화점이 쉰다고 남대문 시장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품목과 서비스 상품이 달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 학계, 복합쇼핑몰은 오히려 상권에 도움
기업들은 법 규제보다는 시장 변화 흐름에 맡겨야한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규제가 산업 경제 성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와 시장 트렌드로 볼 때 쇼핑 자체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교환 장소가 아니라 여가와 엔터테인먼트가 더해진 공간으로 바뀌었다. 전통시장과 백화점·복합쇼핑몰 상권은 소비자 구매 품목과 소비 유사성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비제바노 황규명 대표는 “전체 경제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백화점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은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보다 침체시키는 것이다. 정부 경제 활성화 정책 의지와 맞지 않다. 유통 중심은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이다. 현재 소비자는 쇼핑 트렌드에 따라 체험형 위주의 몰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다른 반대쪽 상권을 막는다고 전통 시장이 부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법안 요지는 복합쇼핑몰과 같은 초대형 유통 매장 진출 확대로 골목상권과 영세상인 위기가 가속화되는 것을 막자는 데 있다. 아울러 유통업 근로자들 건강권을 보장하는 취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로 복합쇼핑몰 출점이 오히려 상권을 살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논문집 ‘복합쇼핑몰 출점이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심형에 있는 점포는 지역 내 소비를 강화하고 지역 유출을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외형 복합쇼핑몰이 출점하면서 외부 고객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재개발이 활성화되면 인근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춘한 교수는 이 논문에서 “기존 점포와 상생을 위한 지원(업종, 품목, 서비스 전환 등) 뿐 아니라 상권 전체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