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코로나 재난에 피눈물 흘리는 봉제인들

거래절벽에 일감 막힌 봉제공장 방역물품 특수에 희망 걸었지만 유통기업 사기에 공든탑 무너져 죄는 지은 데로, 덕은 닦은 데로 엄정한 법의 심판 이뤄져야

2021-08-14     정기창 기자
“2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방호복을 빌미로 여러 업체들에 연이어 5억원의 사기를 당하면서 회사는 부도 직전의 상태에 놓였습니다. 6월에는 급여를 줄 수 없어 5명 있던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요. 지난 7년간 나름 건실한 기업으로 키워 왔는데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글로벌 강소기업’에 선정된 A기업 대표) 방호복 특수가 오히려 재난이 돼 기업들을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3~4월까지만 해도 방호복이나 마스크는 만드는 족족 돈이 되는 노다지였다. 당시 바이어들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물량을 잡고자 했지만 전문성 떨어지는 유통업체들이 시류에 편승하면서 시장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방호복 시장의 난맥에 대한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간 게 5월초였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 사태가 해결되기는커녕 피해가 더욱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례없이 길고 긴 장마가 40일 넘게 지속되던 지난 8월 5일,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를 뚫고 만난 A기업 대표는 한눈에도 초췌해 보였다. 기가 찬 듯 인터뷰 중간중간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던 이 제보자는 밤에 잠 한 숨 못 자고 지난 수개월을 고통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1월까지만해도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글로벌 강소기업에 선정된 건실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2013년 2월 단돈 500만원으로 창업해 2017년에는 500만불 수출탑까지 받은 탄탄한 기업이었다. 그렇게 7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와 기반이 무너지는 데는 채 5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중국 파트너 기업 요청으로 급하게 마스크를 조달하고자 건넨 2억5000만원이 5억까지 불어나 회사 문을 닫는 지경까지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관련인들을 고소했고 그중 한 명은 죗값이 소명돼 구속됐다. 다른 피고인들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지만 그가 쌓은 덕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기업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동안 만난 봉제공장 사장들은 장당 200원(마스크)에서 4000원(방호복) 하는 공임 벌자고 밤을 세워 재봉틀을 돌렸지만 대부분 돈을 떼일 위기에 놓였다. 그 돈이 한 곳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다. 국회와 지역의회, 지자체 등에 갖은 수단을 통해 억울함을 알리고 피해를 회복하고자 노력 중이지만 긍정적 신호는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생산된 제품이 공인시험기관 인증 테스트를 마쳤으므로 하자가 없으니 정부나 공공기관이 매수해 주기를 원하지만 그 길이 쉽지는 않다. 다수의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부 또는 지자체는 “(억울하고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제품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소개는 할 수 있지만 직접 매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 제품은 또다른 기업들간 상품 유통 독점권 분쟁에 휘말려 있어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봉제공장은 계약서 없이 물건을 생산했고, 일부 피해기업은 이익을 바라보고 자기 판단하에 자기 돈을 투자했다. 아직 진행중인 수사와 소송이 있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같은 피해를 야기한 관련인들은 죄가 있다면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한국섬유신문은 신당동에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앞뒤 좌우 사방의 봉제공장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로 이들이 피해자다. 적어도 신당동이나 창신동, 만리동, 숭인동에서 당신 회사 근처의 허름한 건물 지하는 당연히 봉제공장이다. 또 간판 없는 1층에 ‘사람 구함’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으면 십중팔구는 봉제공장이다. 매일 보고 사는 우리 이웃이 코로나로 일감이 막혀 울고 코로나 특수가 한순간에 재난으로 돌변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