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희귀한 신발 신은 나는 비싸고 희귀한 사람”
MZ세대 한정판 신발 리셀 문화
소중함이 돈이 되는 세태 반영
2021-09-04 최정윤 기자
조던 콜라보 한정판 발매일이면 조던 홍대 매장 앞에는 거대한 1020무리가 낚시의자나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오픈을 기다린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다. 이들은 각각 조던 4나 조던X나이키 오프화이트 콜라보 신발을 신고 있다. 조던 홍대 인스타그램 공지에 올라온 드레스코드에 맞춰 입어야 추첨에 응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열린 온라인 래플(Raffle, 추첨)도 마찬가지다. 드레스코드에 맞게 입은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해야 한다. 온라인 래플에 참가한 강소현(21)씨는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 7개 아이디로 등록했다. 웍스아웃과 카시나에서 발매일마다 신청하지만 1년동안 단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다른 친구들도 한 사람당 10개 아이디를 사용한다. 페이스북 패션커뮤니티 슈겜코마켓에서 만난 친구는 1년동안 2번 당첨돼 리셀로 이득을 봤다.
신발을 실제로 착용(이하 실착)하지 않는 사람까지 시장에 참여하면서 리셀 시장은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온라인 래플은 누구나 참가하기 쉬워 고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만든 크림(KREAM)과 서울옥션블루가 만든 엑스엑스블루(XXBLUE), 무신사가 만든 솔드아웃(SOLDOUT) 같은 경매 플랫폼도 덩달아 생겨났다.
신발 구매자들은 리셀플랫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발은 누구나 박스를 열어볼 수 있어 가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리셀플랫폼은 전문가 검수과정을 거쳐 새 정품을 보증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 개인거래에서 일어났던 정교한 가품거래를 방지할 수 있고, 신어본 신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스노우 셀카 어플을 운영하는 스노우는 MZ세대 경험을 바탕으로 크림 플랫폼을 만들었다. 신발 거래보다 또래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스노우 측은 “옷보다 신발이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한정판 리셀문화는 단순히 돈 버는 용도로 생겨난 문화가 아니다. 한정판 신발로 자신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MZ문화가 정착한 것이다. 지디가 신었던 나이키 마스야드의 경우 희소성이 높아, 진품은 소장품으로 모셔두고 실착은 가품으로 신는 MZ세대도 있다. 같은 상품을 3개 사서 소장품용, 비치용, 실착용으로 갖추는 사람도 있다.
XXBLUE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 드롭존이나 스노우 크림 매장은 구매보다 전시, 체험 목적이 우선이다. XXBLUE 유나리 홍보마케팅 팀리더는 “가격이 비싸다보니 10대들은 매장에 부모님 손을 잡고 방문한다”며 “평소에 보기 힘들고 가격이 비싼 상품들이라 신발을 사기 전에 실물을 영접(직접 체험)하러 온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일 평균30명이 신발을 구경하러 왔다.
아디다스 매장에서 근무했던 김구현(26)씨는 2018년 한겨울에도 이틀동안 텐트를 치며 줄 섰던 선착순 한정판 판매 현장을 기억한다. 중국과 한국 한정판 구매전문업자들이 줄서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면서 사재기 방지용 추첨권을 나눠주는 래플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도 조던홍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업자가 적어낸 줄서기) 사설명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는 문구가 있다.
구매업자들이 나타나면서 리셀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에어조던1X디올 하이는 발매가가 280만원대였지만 한 때 2800만원대로 치솟았다. 유 팀장은 “그럼에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무신사 솔드아웃 측은 “개인 소장품을 수요자에게 파는 합법적 가치 거래로 본다”며 “안전성과 편의성 확보로 시장이 성숙하면 안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XXBLUE 매장 방문기] “돈 줘도 사기 힘든 한정판 구경하세요”
온라인 스니커즈 리세일 플랫폼 XXBLUE(엑스엑스블루)가 만든 신사동 드롭존은 신발을 전시, 검수, 판매하는 오프라인 공간이다. 서울옥션 건물 지하에 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나이키와 디올이 콜라보한 에어조던1X디올 하이가 보인다. 한정판 프리미엄이 붙어 발매가 280만원 제품이 2800만원대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0만원대로 내려갔다.
왼쪽에는 신어볼 수 있는 신발, 오른쪽에는 신어볼 수 없는 신발을 전시했다. 오른쪽에 전시된 신발은 한 번이라도 신으면 바로 모양이 달라지는 신발이다. 드롭존 전시대에 신발과 함께 놓인 KAWS(카우스) 피규어와 프로듀서 그레이 콜라보의류도 모두 살 수 있다.
드롭존은 온라인플랫폼에서 경매 거래가 성사된 상품을 판매자가 놔두고 가는(드롭하는) 장소다. 구하기 힘든 한정판 상품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XXBLUE에서 경매를 붙여 산다. 경매가 끝난 상품은 판매자가 XXBLUE로 배송하고, 검수하고, 다시 구매자에게 배송하는 작업을 거친다. 판매자가 신발을 신사점 드롭존에 건네면 구매자가 신발을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줄어드는 셈이다.
드롭존에서는 검수작업도 이뤄진다.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새 상품인지, 진품인지 검수해 XXBLUE 태그를 다는 작업이다. 신발은 미개봉택이 없어 언제나 박스를 열어볼 수 있다. 전문가가 새 진품을 검수한 뒤, XXBLUE 택을 달아둔다.
코로나19 시국으로 모든 리세일 문화는 온라인으로 전환된 상황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이전에는 드롭존에 일 30명이 방문해 한정판 신발을 체험했다. XXBLUE 드롭존은 사회적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6일까지 임시휴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