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故이병철 회장의 ‘장미라사’ 와 ‘이건희 양복’
삼성의 DNA는 섬유패션산업
최초의 복지 ‘골덴텍스’ 탄생
세계 최고 ‘란스미어’의 등장
故 이건희 회장 착장 ‘화제’
자긍심 고취도 승계 됐으면
2021-10-29 이영희 기자
“장미라사를 아시나요?”
장미라사는 1956년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한 제일모직이 재단을 테스트하고 샘플복을 만드는 부서로 전격 가동했고 1961년 이후 맞춤양복점으로 운영됐다.
이 결과 1970년 국내 최초 기성복 ‘댄디’가 탄생했다. 댄디는 우리나라 기성복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 뒤 버킹검, 로가디스, 갤럭시 등으로 진화, 고급 기성복 시대가 본격 열리게 됐다. 최근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회장에 이어 최고급 소재 ‘란스미어’ 개발에 성공했다.
이건희 회장이 자주 입어 ‘이건희 양복’으로 세간의 입소문을 탔던 ‘란스미어’는 이후 고가의 해외 브랜드를 선호하던 유명 인사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다. 란스미어는 230수로 제일모직이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기록된다.
실내에서 사육한 생후 1년 미만의 양 목덜미에서 추출한 양모로 만들어지며 원단 1그램에서 무려 170m의 실을 뽑아내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 가늘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다.
고가격인데다 재단과 봉제 등에 숙련된 기술이 요구됨에 따라 최고급 양복점의 장인들 또한 ‘란스미어’로 옷을 짓는 것이 로망이었다.
2013년 제 35차 세계주문양복연맹 총회에서 백운현 명장이 230수 란스미어 원단으로 수작업 완성한 수트가 전시돼 큰 화제가 됐다. 양복에 소요된 원단 가격만 1500만원대로 3000만원대를 호가하는 최고가 수트는 외국의 양복 장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백운현 명장은 “외국의 테일러들에게 한국에도 최고의 소재와 기술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란스미어 수트를 만들었다”고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댄디한 수트가 잘 어울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로서 신중한 걸음에 맞는 세련미를 추구했다. 이러한 이 회장이 즐겨입은 란스미어 수트는 당연히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소재, 명품 양복 브랜드로 해외 럭셔리 수트에 당당한 경쟁력을 획득하리란 기대가 있었다. 특히 우리기술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켰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이 회장이 즐겨입은 수트브랜드로는 브리오니, 키톤 등 해외 브랜드가 자주 거론된다. 대를 이어 명장들의 난이도 높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브랜드들은 성공한 남성들의 척도로 당연시됐다. 이 당시 이건희 회장역시 이병철 회장처럼 한국대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졌을 것이다.
란스미어는 1995년 원단 브랜드로 시작해 2005년 원단과 맞춤 수트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이병철 회장 꿈의 발로였던 장미라사는 삼성의 발전상에 장밋빛 미래를 선사했지만 현재로 이어지진 않은 듯하다. 장미라사는 1988년 삼성이 본격 기성복 사업에 뛰어들면서 분리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기초는 섬유산업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태동과 발전 역시 섬유산업과 역사를 함께 했다. 제일모직은 국내 맞춤복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켰고 국제 기능올림픽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메달을 휩쓰는 것이 당연시 될 정도였다.
약수동에 위치한 맞춤양복협회 회관은 제일모직과 장인들이 함께 발전한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또한 남성복의 기성화와 볼륨화를 앞당긴 주역이다. 지금 삼성에서 섬유패션 사업의 비중은 다른 부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고 이건희 회장은 사후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거목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에 이어 미래먹거리 사업으로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중요성과 의지가 승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삼성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리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