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24)] 명품거리 매출 전년비 1/10 토막…유령도시 된 밀라노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적 끊겨
시내는 텅텅 비고 외곽생활권 인기
2021-11-12 편집부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주가 지난주부터 또다시 레드존으로 분류됨에 따라 직업상 목적이 아니면 거주하고 있는 시(市)나 주(州)외로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렇지만 거주지역 내에서의 이동이 지난 록다운 때보다 덜 엄격해 폐쇄명령을 피한 서점 등 몇몇 상점을 방문하는데 어려움이 덜한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록다운 발표 후 일 때문에 가게 되었던 밀라노 시내는 예상보다 더욱 한산한 모습으로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난 4월까지의 록다운 이후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 가을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 있다. 바로 ‘밀라노 시내의 유령화’다. 밀라노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두오모 광장 근처는 거짓말처럼 인적이 드문 도시의 블랙홀로 변해 있었다.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주로 일반 및 공기업의 회사원이나 서비스 종사자들로 가득했던 밀라노 시내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부분 스마트 워킹으로 전환된 업체들이나 폐쇄된 샵들로 인해 보통 주말에나 볼 수 있던 한산한 풍경보다 훨씬 인적이 드물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영향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이 도시에 생긴 변화들이 더 큰 근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밀라노에서는 관광산업이 크게 부각되고 발전했는데 이난 지난 2015년에 있었던 엑스포2015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2015년 5월부터 10월까지 밀라노에서 열렸던 엑스포는 ‘지구를 먹이고 삶을 위하는 에너지’라는 주제로 음식과 식품에 대한 다양한 교육과 식량부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식품에 대한 전반적 문제를 다루는 엑스포였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주제로 진행됐던 만큼 밀라노는 엑스포가 진행되던 시 외곽지역뿐만 아니라 시내의 관련 단체나 요식업체를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밀라노로 밀려들었던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호텔이나 비앤비(B&B)의 등록도 큰 규제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엑스포 이전까지의 밀라노는 관광도시로서 명성을 얻지 못한 채 큰 한계를 보여왔다. 그러나 2100만명의 방문객이 모여들었던 엑스포 이후부터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밀라노가 관광도시로 크게 성장하는 여러 통계를 볼 수 있었다.
밀라노 시내에 제2 주택을 소유한 시민들은 그동안 해왔던 월세보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비앤비나 숏텀 렌트(Short term rent)로 집을 빌려주는 시스템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밀라노 시내에서 주거공간을 찾던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마땅한 주거 시설을 찾기 힘들게 되었고 더욱이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은 주거 시설들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인상되었다.
엑스포 전, 후 몇 년 사이에 나타난 이런 현상으로 밀라노의 무주택 시민들은 점차 시 외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처럼 밀라노 상권이 역전될 것으로는 올해초까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밀라노 시내에서 가장 큰 상권 지역에 수십년 동안 자리잡고 있던 세탁소는 이제 커피숍으로 변했고 록다운 이후 그 커피숍마저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렇듯 시내에 살고 있는 시민들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마저 하나 둘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
반면 시내 관광지역을 벗어나 시 외곽으로 갈수록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각종 상점, 서점,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적극적인 소비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난, 미처 기대하거나 계획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시내 중심지역의 극단적인 모습은 단순한 도시형태의 변화가 아닌 좀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밀라노 시내에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른 코르소 코모 인근 뽀르따 누오바(PORTA NUOVA) 구역은 막대한 증축과 근로자 유입을 계획해 최근 10여년간 리모델링해 왔다.
그러나 스마트워킹이 불러온 다양한 일터의 폐쇄로 인해 소비위축이 심해지고 상권 전체가 부분적으로 사라질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시내에 위치한 명품 거리의 지난 여름 상품 매출은 2019년에 비해 약 90%가 감소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렇게 가면 유럽에서도 명품 거리의 유명샵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한 밀라노시의 적극적인 개입과 진심으로 도시를 생각하는 긴 안목이 절실한 순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