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구조가 흔들릴 때 충격이 오면 무너진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 생사의 기로 최고경영자는 지금부터 초석 놓아야 경기 회복될 때 빠르게 정상에 복귀 조직내 거품과 부조리 바로잡고 이제는 2021년을 준비해야 할 때

2021-12-17     정기창 기자
한국 섬유패션기업 조직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순위를 매겨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가 가족 같은 문화와 정이 지배하는 조직 특징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은 회사 경영의 정점에 서 있는 최고경영자 1인 카리스마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회사는 명시적으로 능력과 성과지향 조직을 강조하지만 이면에는 서로의 밥통을 지켜주는 온정주의가 만연하다. 오너는 직원간 화합 문화조성을 상사의 중요한 평가 덕목 중 하나로 꼽으면서 이를 방조·조장하며 흐름에 편승하기도 했다. 평생고용 개념이 살아 있던 과거 수십 년간은 이런 문화가 선호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보다 나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MZ세대로 통칭되는 현 젊은 세대는 이런 조직 문화에 넌덜머리를 낸다. 왜 우리 기업들은 능률과 성과를 중시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먼저 ‘인재에 대한 정의(定義)의 부재(没有)’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모든 기업은 사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5명 미만의 소규모 봉제공장에서 매출 1조원이 넘어가는 그룹 계열의 패션 대기업까지 예외가 없고 이해하기도 쉬운 단순한 명제다. 그러나 ‘당신 회사가 지향하는 인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기업은 많지 않다. 사람 중요한 줄만 알고 우리 기업에 필요한 인재의 자질과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한다. 돈을 벌고 매출에 기여하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탐색과 연구가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 인재상이 불분명하니 기업의 나아갈 미래 비전도 모호함 속에 갇혀 있다. 다음은 ‘직무 정의와 보상의 부재’다. 올바른 인재상 확립을 위해서는 직무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회사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파악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첫번째다. 이를 토대로 적정인원을 산출해 사람을 뽑고 능력을 평가하며 적재적소에 인원을 투입해야 한다. 적당히 시간 때우다 남들 가면 나도 집에 가는 널널한 조직문화는 잘못된 직무 분석과 이어지는 보상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업무가 명확치 않으면 상응하는 보상 체계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런 것이다. “MZ세대는 자기 자신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칭찬받고 보상받고 싶어한다. 팀을 단위로 한 평가는 점점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야박한 말이지만 이제 기업은 직원들에게 더욱 냉정해지는 한편 그에 대한 성과보상 체계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명확한 업무 정의와 함께 이에 따른 철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에서 팔자 좋은 고민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탕을 지금부터 깔지 않으면 “구조가 흔들릴 때 충격이 오면 무너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이 결코 공염불이 아니라는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얼마전 정보를 다루는 IT회사의 빅데이터 전문가를 만나 기업 조직문화 변화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회사는 성과위주 문화 정착을 위해 지난 수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정규직 채용 전, 3개월 인턴과정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거나 불만을 품은 지원자들이 수도 없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기존 조직도 흔들렸다. 중간관리자들은 새롭게 설계된 직무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하고 사방에서 온갖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회사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솎아내는 한편 인력을 재배치하고 직무 교육을 다시 했다. 냉정하게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시키고 성과에 기반한 보상 원칙을 고수한 결과 지금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여기까지 족히 5년은 걸렸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국내 최고의 IT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