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27)] ‘라 스칼라’ 공연으로 신년을 맞는 이탈리아 국민
올해, 무대 원동력이 된 노동자들 조명해 큰 감동
2022-01-21 편집부
이탈리아인들은 밀라노의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인 스칼라 극장(il Teatro Alla SCALA)을 간단하게 스칼라(La SCALA)라고 부른다. 라 스칼라는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지나서 보이는 스칼라 광장의 차도 반대편에 있다.
라 스칼라의 시즌 첫 공연을 칭하는 ‘라 프리마 델라 스칼라’는 이탈리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매년 밀라노 지역의 성인인 산탐브로지오(Sant’ AMBROGIO)의 축제일인 12월 7일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올 시즌의 라 프리마 델라 스칼라는 ‘별을 다시 보기위해(A Riveder le Stelle)’라는 주제로 기획된 공연이었다. 그러나 올해 공연은 스칼라극장 입구가 굳게 닫힌 채 TV중계만을 통해 이탈리아 전국에 선보였다.
사실 예술이나 패션 사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루 저녁 선보이는 오페라의 첫 공연도 이탈리아 모든 사람들의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이벤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1778년 이후 200년을 넘게 예술계의 명맥이 이어져오는 동안 시즌의 첫 공연은 단 3번 극장 내부 문제로 인해 그 전통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극장문을 닫아야 했던 사건은 스칼라의 첫 공연에 사람들 이목이 집중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이번 공연이 무엇보다 TV 앞의 이탈리아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24명의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텅빈 관객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펼친 장면이었다.
올해 공연의 감독을 맡은 다비데 리버모어(Davide Livermore)는 첫 무대가 펼쳐지는 동안 카메라가 객석으로 서서히 빠지도록 설정했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텅빈 객석과 극장 내부에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디렉션 뿐 아니라 예술가들까지 한 목소리로 큰 용기가 필요했던 첫 경험이었다고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했다. 여느 해 같았으면 정계와 재계의 유명인사들이 스칼라 극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그들이 선보이던 디자이너 의상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화제를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2020년에는 웅장한 시작대신 청소부로 분장한 소프라노 마리아 그라찌아 솔라노(Maria Grazia Solano)가 무대에 나타나 반주 없이 홀로 이탈리아 국가를 부르며 오프닝을 알렸다. 특히 올해 공연은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샤일리(Riccardo Chailly)의 지휘아래 많은 아티스트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공연이 진행됐다.
또 유명 여배우들을 각자 브랜드의 뮤즈로 초대해 함께 입장하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발렌티노, 마르코 데 빈첸죠는 무대 위 아티스트들의 눈에 띄는 화려한 의상을 제작하며 프리마 델라 스칼라에 참여했다. 특히 공연 첫 부분에 내세운 스칼라 극장에서 일하는 관련 종사자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안겼다.
이 장면은 TV방송으로나마 시즌의 첫 공연을 매듭지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무대 뒤 노동자들에 대한 소중한 배려였음에 더욱 빛났다. 라 스칼라는 준비기간 동안 몇몇 종사자들의 코로나19 확인으로 인해 준비해 오던 공연을 2~3주 전에 취소했고 새로운 공연 형태를 택해야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예술성 높은 오페라 공연보다 유명한 예술가들을 앞세운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선보이게 된 것이었다. 매년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역사적 공연을 준비하는 곳은 스칼라 작업실로 불리는 안살도(Ansaldo)라는 곳이다. 원래 무대 준비작업은 보비자(Bovisa), 페로(Pero)와 같이 밀라노 외곽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나눠져 전담해 왔다.
그 뒤 2001년 다양한 패션 박람회로 유명한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의 슈퍼스튜디오 맞은편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80년대까지 공업용 전기 변압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라 스칼라의 다양한 작업공간이 이곳에 모인 후에도 계속 같은 이름인 ‘라 스칼라 안살도 작업실’로 불리고 있다.
크게 3개의 파빌리온으로 나뉜 이 작업공간은 총 2만㎡가 넘는다. 조각, 목공품 등 다양한 장식과 기계 부품에서 의상까지 무대 설치의 전반적인 아카이브를 관람할 수 있다. 라 스칼라 안살도 작업실은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시간대 가이드 투어로 작업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입장객들은 무대의상 제작자, 조각가, 목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약 150여명의 종사자들이 남긴 발자취를 잠시나마 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안살도의 무대의상 제작자들은 한 시즌에 약 800~1000벌에 가까운 무대의상을 새로 제작하고 기존 아카이브 중 1500여개를 수선해야 하는 등 노동량도 만만치 않다.
각종 무대의상이나 소품제작에 관련된 전문인력이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가운데 라 스칼라 안살도 작업실에서 모든 의상과 소품을 다루는 종사자들의 바쁜 손놀림은 무대 위의 아티스트 만큼이나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