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좀비 디자이너’ 소생술이 절실하다

신진디자이너 양산시대 독립브랜드 성장 녹록치 않아 지원사업 기웃거리며 초심 잃어 매니지먼트·판로확보 절실 패션계 BTS 탄생은 요원한가?

2022-03-12     이영희 기자
유학파 디자이너 A씨는 귀국 후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데뷔했고 한 동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해외로 취업해 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비슷한 경력의 디자이너 B씨는 브랜드 전개를 잠시 접어 두고 대학 강사로 활동 중이다. C씨의 경우는 자체 판매활동은 없지만 정부나 단체의 지원 프로젝트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지속가능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C의 브랜드 컨셉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여기저기 지원사업에만 응시하며 판매실적이 전무한 디자이너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패션 디자이너지만 활동을 멈췄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를 ‘좀비’ 디자이너라고 일컫는다. 현재 서울패션위크의 신진 등용문 GN(제너레이션넥스트)을 통해 배출된 상당수가 ‘좀비 디자이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지만 현실을 미뤄 볼 때 기성 디자이너로 성장, 경쟁력을 획득한 경우는 드물다. 패션디자이너가 반드시 판매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패션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디자인개발과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 문화예술과 소통을 통한 시너지창출 등 다양한 활동 영역이 있다. 독창적인 감각을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녹여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도 있다. 좀비 디자이너들은 소생하고 싶어한다. ‘대외적인 활동과 안정적 판로확보’는 이들의 공통된 바램이다. “일부 판매처의 광고비 및 판매수수료, 부대비용 등은 부담이 큰데다 자체 브랜드 밀어주기 성향이 강해 발붙이기가 어렵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또한 클라우드 펀딩이 각광받고 있지만 그마저도 수수료가 올라 효율성이 없다고 한다. 자본이 취약한 디자이너들로서는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어떨까? 기업들은 대외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선호한다. 디자인도 중요하겠지만 ‘이름값’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마저 코로나19로 인해 쉽지않은 상황이다. 최근 패션브랜드사들은 자체 디자인실 조차도 축소해가는 분위기다.  참신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에 대한 의향을 모 기업 대표에게 제안해 봤다. “현재 프로모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고 현업의 디자인책임자의 대답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백화점 등 대형유통사들의 ‘사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대형유통사나 패션브랜드들이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감각있는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인재를 부각시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가치를 재인식시키는 계기도 될 것이다. 디자이너브랜드는 동대문이나 저가시장의 제품과는 달라야 한다. 제품에 부여된 감성, 차별화된 디자인이 부가가치이며 이를 가격경쟁구도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와 함께 디자이너도 자신의 브랜드 타겟층의 니즈에 부합하는 디자인 개발에 힘써야 한다. 이와같이 디자이너들의 독창성과 감각이 돋보이는 제품들을 설득력있는 가격으로 선보일 수 있는 온, 오프라인 유통망 형성 및 확보가 절실하다. 컬렉션 참가로 인지도를 쌓고도 티셔츠나 맨투맨 제품으로 중저가 대중 브랜드와 판매경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차별화에 대한 자성적 노력이 전제돼야 함은 말할 나위없다. 디자이너는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귀한 자원이며 현재 우수한 인재가 많다. 이러한 인재들의 재능을 경제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는 패션디자이너전문 매니지먼트 역할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