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4)] 세상에서 가장 비싼 면 원단

2022-05-21     안동진
셀룰로오스Cellulose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5000만 종에 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중축합물’이며 식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풀도 나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구성성분이 같은 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2000톤의 무게에 80m가 넘는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가 제대로 서있으려면 부드러운 셀룰로오스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26층 건물에 달하는 큰 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철에 버금가는 강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보완재는 우리가 원단을 stiff 또는 Hard 하게 만들기 위해 원단의 가공에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우리는 수지(Resin)라고 부르며 나무의 수지를 리그닌(Lignin)이라고 한다. 나무는 구하기 쉬운 재료지만 리그닌이 섞여 있어 그대로는 섬유의 재료로 쓸 수 없다. 나무를 분쇄해 셀룰로오스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한 것이 ‘펄프’ Pulp이다. 뼈를 제거하고 살코기만 남긴 정육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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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의 솜은 나무와 달리 리그닌이 없는 거의 순수한 셀룰로오스이다. 펄프는 100% 셀룰로오스이므로 면과 펄프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다른 점은 ‘길이’ 즉, 섬유장 뿐이다. 면도 천연섬유 중 섬유장이 가장 짧은 단섬유이지만 펄프는 그보다 더 짧은 섬유로 되어있다. 면은 방적기술의 발달로 잘 빗질해 꼬임을 가하면 실로 만들 수 있지만 펄프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펄프는 부직포가 되었다. 부직포는 제직, 편직에 이어 원단을 만드는 세번째 방법으로 섬유-->실-->제직을 거치지 않고 섬유를 바로 원단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섬유가 모래라면 실은 벽돌과 같다. 부직포는 집을 만들 때 벽돌없이 모래와 시멘트가 섞인 모르타르로 벽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직포는 단순히 섬유들을 겹겹이 2차원 평면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인 것이다. 바로 종이가 그렇다. 즉, 종이는 셀룰로오스로 만든 부직포이다. 면직물과는 제조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둘은 정확히 같은 성분으로 된 원단이다.  워싱턴, 제퍼슨 그리고 링컨과 해밀턴 등,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 있는 달러 지폐는 면 75%와 Linen 25%가 혼용되어 있는 면 혼방 부직포 원단이다. 질긴 린넨이 포함된 이유는 필요한 내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군복이 면과 폴리에스터를 혼방한 소재를 쓰는 이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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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지폐는 엄밀히 말해 종이가 아니다. 원료가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달러 지폐는 미국의 Crane & Co., 라는 200년도 더 된 역사적인 제지회사에서 만들고 있다. (제조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져 있으며 따라서 그 회사가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짐작이 간다.) 사실 나무보다 수십 배 비싼 거의 순수한 셀룰로오스의 결정체인 면을 종이로 만드는 일은 없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불짜리나 1불짜리나 제조 원가는 같지만 그 가치 차이는 100배나 된다. 그런데 달러를 자세히 보면 빨간색과 초록색의 작은 섬유가 불규칙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은 비록 몇 오라기에 지나지 않지만 바로 실크(Silk)다. 위조 방지를 위해 지폐 제작 공장에서 집어넣은 것이다. 달러는 145년 전인 1861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최근에는 실크 대신 합성섬유를 쓴다고 한다. 나일론은 1935년에 발명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년 전 면 파동이 일어났을 때 달러지폐의 제조원가는 7배로 뛰었지만 실제 가치는 오히려 떨어졌다. 달러 지폐는 크기가 15.59x6.63 cm에 무게는 1g 정도가 나간다. 규격이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놀랍다. 미터법을 쓰지 않는 지구 상의 몇 안 되는 나라가 미국이지만 인치 단위에서도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다. 왜 이런 희한한 크기를 갖게 되었을까? 궁금하지만 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겠다. 면이 1kg 있으면 이걸로 달러지폐를 750장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달러 지폐로 1yd의 원단을 만들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무려 99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Cotton/Linen으로 된 이 원단은 1달러짜리로 만들어도 야드 당 99불이 된다. 100불짜리로 만든다면 9900불이 될 것이다. 이 원단 10만y는 9억 9000만불이다. 폴리에스터 듀스포 원단 가격의 1만배이다. 달러 지폐는 코팅되어 있다. 지폐를 코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얀색인 지폐가 투명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Full dull 효과를 위해서이다.  Full dull 원사를 만들기 위해서 화섬 공장에서 폴리에스터나 나일론의 제조 과정에 들어가는 첨가제는 이산화 티탄(TiO2)이다. 이산화 티탄이 빛의 산란으로 흰색 원단을 투과하는 것을 막는 원리이다. 소광제 라고도 불리는 이산화 티탄은 자외선 차단을 위해 썬 블록 크림에도 사용되며 심지어는 하얀 초콜릿의 성분이기도 하다. 달러 지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Full dull Cotton Linen 원단이다. 얼마전부터 린넨 대신 합성섬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질겨 지기는 하겠지만 Sustainability에는 반하는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