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자투리원단 사용하면
물 70%, 에너지 88% 절감
원가 낮아져 소비자·기업에 이득
폐섬유 재활용 기술과 디자인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미래 과제
2022-05-28 윤대영
2020년 2월 독립 102주년을 맞은 에스토니아의 케르스티 칼유라이드(Kersti Kaljulaid) 대통령은 자국의 패션 디자이너 리트 오스(Reet Aus)가 제작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이 드레스는 칼유라이드 대통령이 자신의 옷장에 넣어 두었던 오래된 옷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꺼내어 자르고 이어 붙여서 만든 업사이클 옷이어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더구나 수도 탈린시내에 있는 펠구란나 유치원의 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에 나오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녹색 환경을 상징하는 다양한 푸른 색깔들을 그대로 재현하여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에 도전하는 유럽의 환경 선도 국가의 의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 드레스를 제작한 리트 오스의 패션 산업에 대한 철학은 남다르다. 아직 입을 만한데도 버려진 옷들이 매립되고 소각되는 안타까운 현장을 방문한 뒤, 자원순환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2012년에 섬유 자투리 재활용 지원프로그램인 업메이드(UPMADE)를 개발하여 여러 나라 봉제 공장에 보급해오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의류 가공 공정에서 어떤 모양의 자투리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고 생산에 투입된 원단 중 불가피하게 발생한 17%의 자투리를 버리지 않고 최대한 재사용하여 화려하고 매력적인 새로운 옷을 생산할 수 있어서 기업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
자투리를 활용하게 되면 새로운 섬유 원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의 70%, 에너지의 88%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기업이 쓰레기 처리 비용을 원가에 포함시킴으로써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보다 오히려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최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ESG)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이미 에스토니아는 10년 전부터 중소기업의 생산 현장에까지 실질적으로 적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18년 중국 정부가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우리나라에서도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2019년 말부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일회용품이 등장하게 되었고, 지난해의 경우 택배포장에 사용된 폐기물이 이전보다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의식주의 일상생활에서 보다 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20년 전에 비해 4배나 많은 섬유와 의류가 사용되고 그중 30%만 재사용되며, 70%는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지구 환경오염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섬유 의류 산업 종사자들도 지금과 같은 생산-사용-폐기의 비순환 경제 체제로 무한한 경쟁이 계속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봉제기업 세진플러스가 버려지는 화학섬유를 녹여서 개발한 건축용 패널은 의류 폐기물 처리에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섬유와 의류 산업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건축 산업의 원자재로 변신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이다. 우리가 입을 옷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집도 계속 만들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투리와 폐기물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에스토니아와 한국의 폐섬유 재활용 기술과 디자인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자원순환의 가능성을 여는 사례들이다.
아직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려면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업종간 협력과 학계의 관심, 정부 정책이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그린 뉴딜의 실제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