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버려지는 양말과 티셔츠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
버려진 양말이 역할극 캐릭터와
고양이 인형 등으로 업사이클링
버려진 티셔츠는 카페트, 러그
바구니 등 생활용품으로 재탄생
은퇴자와 경력 단절자 창업기회
2022-11-26 윤대영
국립극단의 어린이 청소년 연구소장을 역임한 극단 사다리 대표 유홍영 선생을 만나게 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3년 전 당시 필자는 개관한 지 얼마 안되어 텅빈 건물 뿐이던 서울새활용플라자 안에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그는 버려지는 자원을 모아놓은 소재은행에 들어서자 갑자기 크게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와우, 이게 다 버려지는 것들인가요? 모두 다 새롭게 보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동극을 개척하고 4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마임 연기의 전문가답게 그는 소재은행에 쌓여있던 양말목을 사용하여 참여자가 직접 소품을 만들어 역할극까지 하게 하는 시민참여형 연극을 만들어냈다. 버려지는 자원을 마임과 놀이에 접목시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연극의 새로운 표현양식을 개발한 것이다.
양말목은 대량으로 양말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되는,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자투리들이다. 하지만 물성은 매우 부드럽다. 신축성이 있고 여러 색깔의 재료들로 넘쳐난다. 이런 양말목으로 동물이나 사물의 특징만을 강조해 보여주는 소품을 직조 방식으로 만들어 연극의 캐릭터로 활용하면 아주 재미있다.
시민들은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참여한다. 양말목과 플라스틱 병뚜껑, 철사 등 별 것도 아닌 물건들을 함께 사용하여 간단한 형태의 인형을 만들고 즉흥 시나리오와 장면구성을 해서 작은 무대에 공연을 올린다. UNESCO 국제 교사 연수 프로그램으로 방한한 각국의 초중고 교사들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소화해내는 업사이클 융합교육 워크숍이다.
서툴지만 공연까지 모두 마치고 난 참가자들은 버려지는 쓰레기들로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웃으며 환경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을까 놀라는 경우가 많다.
어느날 양말 한 짝이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 일상 생활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런 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까운 양말의 쓰임새를 찾아주는 작가가 있다. 산업디자이너로 정부기관과 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후 은퇴한 조선희 여미갤러리 관장이다.
그는 버려진 양말 한 짝으로 귀여운 인형을 만들어 ‘끼리끼리’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2020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대구시 의료 현장에 마스크를 착용한 고양이 인형을 기증하여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주변에 강조하는 조선희 관장은 자신의 디자인 기술을 잠재우지 않고 농촌 재생에 기여하기 위해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작은 갤러리를 열고 매일같이 새롭고 흥미로운 업사이클 작업 중이다.
버려지는 티셔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베테랑도 있다. ‘생활기술과 놀이멋짓 연구소’라는 이름 만큼이나 멋지고 신나는 수업을 하는 김성원 선생이다. 그는 의류 업사이클을 위한 직조기를 제작하여 버려진 옷과 원단을 활용한 ‘알록달록 직조 워크숍’을 열고 새로운 창작과 제품디자인 개발을 시도했다.
이 워크숍에서는 가정에서 입다가 버리는 티셔츠같이 부드러운 물성의 헌 옷을 여러 개 챙겨와서 적당히 자른 다음 특수 제작된 권선기에 걸어 밧줄을 꼬는 일부터 배운다. 초보자들에게는 신기한 권선 작업이 끝나면 이를 직조하여 카페트나 러그, 바구니와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은퇴자나 경력 단절자들에게는 새로운 일거리와 창업의 기회가 되기 때문에 큰 호응을 보인다. 지자체에서 설립하는 각종 공공시설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럴 때 매우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국제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억 톤 가량의 의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고, 소모되는 에너지와 물, 염색 공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고려하면 버려지는 의류폐기물을 최대한 줄이고 새롭게 사용하려고 하는 리사이클과 업사이클의 가치와 중요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