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찾는 동네 뜬다 - 북촌 서촌 상권

2022-12-30     이지수 기자

문화와 커피 그리고 패션이 동시에 존재하는 북촌 서촌 상권에 M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촌은 고궁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예술과 문화, 역사가 동네 골목에 깃들어 있고 서촌은 간판 없는 고감도 브랜드가 모여 MZ세대를 끌어들인다. MZ세대가 유입된 북촌과 서촌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브랜드와 미술관·갤러리 문화가 가득한 북촌
전통·현대 조화된 동네에 유니크한 패션 입성

늘 관광객으로 북적대던 북촌 거리가 코로나로 한산해지자 국내 MZ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고궁과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바라캇, 아라리오 뮤지엄 등 크고 작은 미술관을 찾아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예술과 문화, 역사로 가득 찬 동네의 매력을 몸으로 느낀다.

기존 북촌 상권은 관광객의 성지라 기념품 샵들이 자리잡고 있는 상권이었다. 2년 전부터 코로나 여파로 거리가 정비되자 감각 있는 카페들이 들어섰고 몇 년간 공사중이었던 서울공예박물관 개관에 거리가 화사해졌다. 최근 송현숲에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 확정되는 등 호재도 있다.  미술관과 카페로 MZ세대가 몰리자 ‘넘버링’, ‘설화수’, ‘앤더슨벨’ ‘노티드 도넛’ 등 국내 브랜드들이 발빠르게 입점을 결정했다.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매장이 아닌,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담아 MZ세대가 몸소 경험하게 만든 매장이 특징으로 북촌 상권을 변화시키고 있다.
문화와
중년의 상징이었던 진주 목걸이를 힙하게 만든 주얼리 브랜드 넘버링은 안국역 오피스 건물 17층에 컨셉스토어를 열었다. 안국역 4번출구에서 창덕궁 방향으로 200미터쯤 걸어가면 높고 두꺼운 회색 건물에 있다. 안내문도 없어 잘 찾아온 것일까 의구심을 안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 02호로 들어가면, 넘버링만의 독특한 핑크 세계가 펼쳐진다.  넘버링은 공간 자체를 하나의 포토존으로 만들었다. 화사한 룸스프레이 향이 퍼지는 넘버링 컨셉스토어는 취향 좋은 사람의 방을 보는 것 같다. 핑크 쇼파, 핑크 화장대, 핑크 진열대 위의 수많은 진주 악세서리의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기는 동시에 창밖 도시 풍경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MZ세대들은 자연스레 오랜 시간 머무르며 사진을 찍는다. 넘버링은 인증샷 이벤트와 진주 찾기 이벤트를 진행하며 손님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브랜드와 친밀도를 높인다. 넘버링 관계자는 “주얼리 브랜드 매장으로는 생소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지만 오히려 생소한 위치를 선택해 MZ세대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찾아오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소비자들에게 넘버링 컨셉스토어를 특별하고 브랜드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촌에는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11월 30년대 한옥과 60년대 양옥을 이어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와 오설록 티하우스를 오픈했다. 대로변의 한옥 건물이 설화수 매장이다.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흙벽 대신 현대적인 통유리 창을 달아 매장 밖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인테리어로 한국의 여닫이 수납장과 조선 백자, 모과 나무 등으로 꾸민 공간에서 설화수 제품이 조화를 이뤄 한국 토종 화장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한옥 뒤로 연결된 양옥 건물은 오설록 매장이다. 한옥보다는 좀더 현대적인 건물이지만 차와 다기, 창밖으로 보이는 한옥과 북촌 풍경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샹들리에 인테리어와 엘리베이터, 바 설록(Bar sulloc) 공간에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혼재돼 있어 젊은 세대들이 흥미롭게 느낀다. 하이컨템포러리 브랜드 앤더슨벨은 오는 5월 기존 도산 플래그십스토어를 안국동으로 이전 오픈한다. 앤더슨벨은 매 시즌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문화에서 얻은 영감을 유니크한 패션 아이템으로 풀어내는 브랜드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도산 스토어에서 예술 전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며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앤더슨벨과 북촌의 조화가 기대된다. 북촌 플래그십스토어의 인테리어 및 건축은 스튜디오언라벨이 맡았다. 스튜디오언라벨은 감각 있는 인테리어 및 건축 디자인을 선보이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다. 정독도서관 건너편에 와이엔 카페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노출 콘크리트와 스테인리스 가구, 유리 테이블 등 미니멀한 인테리어에 예술 작품 같은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여 MZ세대가 사랑하는 카페다.
주얼리

간판없는 고감도스토어 모인 서촌
SNS와 유튜브 타고 찾아 오는 곳

서촌 상권의 움직임은 북촌 상권보다 미리 형성되고 있었다. 서촌은 경복궁역 왼편으로 먹자골목과 통인시장, 오른편에는 오래된 주택들과 소형 갤러리들이 섞여 있는 상권이었다. 몇 년 전부터 경복궁 역 오른편 창성동 일대 시간의 때가 묻은 낮은 건물에 간판 없는 샵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2년 대림미술관을 시작으로 그래픽 스튜디오 워크룸이 자리를 잡고, 바우스하우스 가구 카페 mk2, 사진 책방 이라선이 힙스터들의 인기를 얻었다. 2017년부터는 므스크샵, 바버샵 등 고감도 브랜드를 소개하는 편집샵들이 생겼다. 트렌디하기보다 자신만의 분위기를 가진 가게를 찾는 특정 소비자층이 유입됐다.

빈티지
코로나가 발발한 2019년 서촌에 서점·편집샵 ‘미라벨X오에프알서울(mirabelle x 0fr. Seoul, 이하 오에프알서울)’이 입성하면서 MZ세대들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2층 양옥집을 개조한 건물에 들어선 오에프알서울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명 서점 ‘오에프알파리’의 서울 분점이다. 아트북, 서점 굿즈, 빈티지 의류, 소품 셀렉트샵 미라벨의 아기자기한 소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1층 서점이 중심인 매장이지만 서점 굿즈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서점 로고가 프린팅된 컬러 에코백, 티셔츠, 후드티, 스포츠 백이 한 층 가득 있다. MZ세대들은 한국에서 만나는 파리 서점에 들어와서 파리 기념품을 사는 셈이다. 김현희(가명, 29)씨는 “코로나라서 여행을 못 가는데 오에프알에 오면 파리에 온 느낌이다. 오에프알 에코백을 들고 다니면 파리에 직접 다녀온 사람 같아 보인다. 패션 아이템으로도 예쁘지만 서점 굿즈라서 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에프알서울은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2019년 4월 오픈했지만 SNS 인증샷을 타고 평일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성 브랜드라면 매출을 올리기 바쁜 쇼핑 대목인 크리스마스부터 오늘까지 긴 휴가에 들어가 MZ세대 힙플레이스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에프알서울에서는
오에프알서울 오픈 이후 서촌 상권에 MZ세대 여성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상권은 변화를 겪고 있다. ‘도큐먼트’, ‘러프사이드’, ‘듀테로’ 등 고감도 국내 브랜드를 소개하는 한국 1세대 편집샵 므스크샵은 2008년 신사동에 첫 터를 잡은 후 지난 2017년 서촌으로 이사했다. 민수기 므스크샵 대표는 “당시 이사올 때 상권 형성이 전혀 안 돼 있었지만,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 입점을 결정했다. 이후 바버샵, 테너리 등 감각적인 편집샵들이 들어왔고 오에프알서울이 오픈하면서 MZ세대 여성들이 주요 소비자인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기존 므스크샵 소비자가 남성에 한정됐었다면 지금은 여성 소비자 유입이 매장 전체의 30%로 대폭 늘었다”고 밝혔다. 므스크샵은 최근 유니섹스 브랜드 제품을 바잉하기 시작했다.
한옥을
오에프알서울과 므스크샵 중간에 위치한 바버샵은 남성 고감도 수입 브랜드를 바잉하는 편집샵이다. 바버샵 관계자는 “오에프알 서울이 생기고부터 여성 손님이 급격히 늘었다. 최근 여성 소비자 타겟 모자, 악세서리 등을 바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에프알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이내에 오브젝트샵 알피(RP.), mk2, 므스크샵, 바버샵, 이라선, 책방 더북소사이어티 등 감각있는 샵들이 모여 있어 서촌 이미지에 시너지를 내고 있다. 므스크샵 민수기 대표는 “좁은 상권에 모여 있는 샵들이 고객을 서로 공유하는 느낌”이라며 “코로나 이후 므스크샵 매출은 되레 늘었다”고 말했다.  ▲한옥을 개조하고 조선 백자, 모과 나무 등으로 인테리어한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국 토종 화장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