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성수 수제화 거리 - MZ가 픽한 성수, 핫한 체험형 공간으로 보여줘야

고객 중심으로 장인정신과 브랜드가치 필수

2023-01-14     이지수 기자
성수 수제화 거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약 5 년 전부터 성수 수제화 거리에서 제화 업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카페, 식당, 잡화 상점 등 2030세대들이 선호하는 가게들이 속속들이 들어섰다. 기자가 찾은 7일 수제화 메인 거리 연무장길은 수제화거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카페거리, 식당거리로 완전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중이다. 지하철 2호선 성수 역사(驛舍)로 들어서면 성수 수제화 거리의 역사(歷史)가 시작된다. 성수동 신발 산업의 변천사, 수제화의 구조·명칭 등 수제화 거리의 명맥을 잇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를 관심 있게 둘러보는 MZ세대는 거의 없고 수제화 전시관은 친구들을 기다리기 위한 대기 장소로 쓰일 뿐이었다.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와 ‘성수 수제화 거리’라고 불렸던 연무장길에 막 들어서면 요즘 핫하다는 상권에 다 있다는 호주 코스매틱 브랜드 ‘이솝(Aesop)’ 성수점이 보인다. 지나가는 젊은 행인은 “여기 이솝도 생겼어? 성수 진짜 핫하네”라고 말하며 매장에 이끌리듯 들어갔다. 간판도 작고, 브랜드 이름도 영어로 적혀 있어 멀리서 보면 무슨 매장인지 알기 어렵지만,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이 브랜드 매장에는 제품 향을 체험하는 젊은 세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낮은 건물 위 성수 수제화 거리 입구 간판과 형형 색색의 구두 조형물을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일 이른 오후 연무장길을 가득 채운 행인들은 MZ세대라 불리우는 젊은 행인들이다. 이들은 건물마다 들어선 독특한 잡화 가게와 편집샵, 인생네컷 등 포토 스튜디오, 세련된 카페 분위기를 훑으며 들어갈 가게를 고르느라 눈이 바빴다. 수제화 거리의 흔적은 예쁜 가게들 사이 띄엄띄엄 남아 있는 수제화 업체·피혁 업체·부자재 업체 들에서, 혹은 간판만 남기고 떠난 텅 빈 가게에서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새로 들어선 가게들과 상반된 외관의 가게들에서 과거 수제화거리의 역사를 겨우 짐작했다.  A 피혁업체 김모 과장은 “몇 년 전부터 성수동에 무신사와 쏘카 등 스타트업 회사들이 들어오며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다. 연무장길에 식당이 많아졌지만, 지금도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몰려나와 줄서기 급하다”며 “산업 자체가 하향길을 걷고 있어 성장하지 못한 제화 관련 업체들은 몇 년 전부터 급등하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가게를 뺐고 그 자리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젊은 세대는 여기가 수제화거리인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무장길 거리는 제화 관련 업체, 카페 식당 등 새로 입점한 가게, 공사중인 건물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제2의 수제화 성수드림 만드는 사람들
MZ세대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거리의 색깔이 바뀌자 성수동 기업과 수제화 장인의 브랜드 매장은 젊은 트렌드에 맞게 매장 인테리어를 바꾸고 젊은 감성 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제2의 성수드림을 꿈꾸며 핫플레이스를 찾는 고객에게 체험공간을 선보인다. 

연무장길 중간쯤에 있는 수제화 매장 ‘슈보니에타’는 목재 집기와 적벽돌을 활용한 빈티지 감성의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매장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국 힙합 음악이 흐른다. 임우택 슈보니에타 대표는 일본에서 기술을 배운 저부 장인이다. 15년 정도 저부 경력을 쌓은 후 귀국해 2015년 수제화거리에 슈보니에타 매장을 열었다.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역사와 추억이 쌓인 수제화 거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임 대표는 “최근 10년간 기술자들의 명맥이 끊겼고 경기 흐름 자체가 안 좋아 수제화 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예쁜 제품, 편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한다면 알아봐주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슈보니에타는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어 60대 장인들의 기술과 20~30대 디자이너들의 감성을 담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최근 성수동에 MZ세대들이 유입되며 슈보니에타 소비자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김 대표는 “대개 천천히 거리를 구경하다 신발을 발견하고 매장에 들어온다. 젊은 감성에 고퀄리티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MZ세대 소비자들이 우연히 들어와서 많이 구매한다. 또 수제화에 익숙한 부모님을 따라 MZ세대가 따라오거나 MZ세대가 부모님을 데려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제화거리 입구에는 모던한 화이트 인테리어에 페미닌한 여성화가 다양하게 전시돼있는 매장 ‘베티아노’가 눈에 띈다. 베티아노는 수제화 장인 2세대가 창업한 브랜드다. 백인희 베티아노 대표는 수제화 디자인을 하고 저부 기술자 부모님의 공장에서 젊은 감성에 장인 기술을 담은 베티아노 신발을 만들어 다양한 세대의 소비자층을 가진 브랜드다.  
찰스보툼

■프라이빗 서비스로 수제화 ‘멋’ 제공
수제화 메인 거리에서 약간 벗어나 뚝섬역 근처 공업사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찰스보툼’은 영국 감성의 클래식한 인테리어에 오크 테이블, 가죽 쇼파가 놓여 있는 감도 높은 매장이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 비견할만한 세련된 디자인과 색상, 클래식한 여성 구두 라인까지 구비되어 있는 매장이 특별해보였다. 찰스보툼은 유럽 살롱 문화를 국내에 들여와 예약제 프라이빗 서비스에 비스포크(BESPOKE, 맞춤) 구두를 선보이고 모든 방문자에게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고 있다.

김철 찰스보툼 대표는 에스.티.듀퐁 슈즈에서 독립해2020년 7월 성수동에 찰스보툼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수제화 업체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코로나가 한창인 때였지만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제품과 수제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든다면 소비자가 찾아오리라는 믿음이었다.
김 대표는 “유럽식 살롱 문화의 비스포크 슈즈 브랜드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시장성이 없다며 말렸다. 하지만 MZ세대를 필두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며 “더 이상 가격 경쟁력과 장인 정신을 내세우는 수제화 브랜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이 문화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고감도의 제품의 브랜드를 만든다면 새로운 고객을 시장에 유입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에서 롯데 백화점 4개점과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며 시장 반응을 체감한다. 김 대표는 “찰스보툼 제품은 30~60만원대의 가격이라 브랜드 런칭 초반에는 소비력이 있는 40대 이상 소비자층이 형성됐다. 1년 반이 흐른 현재는 2030 세대가 주요 고객이다. MZ세대는 체험형 서비스를 즐기며 브랜드와 친밀감을 쌓는다. 이들의 재구매율이 50%가 넘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성수 수제화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이제는 고객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Z세대가 산업 전반의 트렌드를 흔드는 소비자층이지 않나. 이들은 브랜드의 명성, 내구성만 따지던 구세대 소비자와 달리 가치기반 소비를 중시한다. 퀄리티만 강조하지 말고 브랜드 가치와 컨텐츠를 고민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