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0)] 고대 플라스틱 쓰레기의 변신

2023-02-11     안동진
지구에 육상식물이 최초로 나타난 시기는 4억년전쯤이다. 식물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는 부드럽기 때문에 최초의 육상식물은 큰 키로 자랄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땅바닥을 기었던 풀들이 번성하면서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는 경쟁이 시작됐다. 그 결과 몸체를 딱딱하게 만들어 휘어지지 않고 태양을 향해 꼿꼿이 성장할 수 있는 뼈대를 갖춘 식물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진화된 플라스틱 뼈대를 갖춘 식물이 바로 나무이다.  나무는 천연 수지를 이용해 중력에 꺾이지 않고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자랄 수 있게 되었는데 보강재 역할을 한 천연 플라스틱이 바로 리그닌이다. 소수성 페놀 수지의 일종인 리그닌은 부드러운 친수성 셀룰로오스 사이에 끼어들어 휘어지지 않는 견고한 프레임으로 식물의 몸체를 보강했다. 20~30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성장한 나무는 약 5000만년에서 1억년 정도 번성하게 됐는데 빽빽하게 자란 나무숲이 지구 최초의 원시림을 형성했다. 

석탄, 플라스틱 쓰레기 퇴적돼 에너지원
그런데 이처럼 갑자기 나타난 견고한 소수성 고분자를 당시의 미생물은 도저히 분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무는 죽어 쓰러져도 썩지 않고 열량을 그대로 간직한 채 땅 위에 차곡차곡 쌓이게 됐다. 오랜 세월 쌓인 나무들은 썩지 않은 채 퇴적돼 열과 압력을 받아 탄화됐고 그것이 바로 수천 칼로리의 고열량을 간직한 에너지원인 석탄이다. 

석탄이 지층의 하나로 형성된 것이 약 3억년전인 고생대 석탄기 인데 약 6000만년 정도 지속됐다. 이후인 고생대 페름기에는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들이 출현해 다시는 석탄을 형성할 수 없게 됐다. 즉, 석탄은 한때, 지구상에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땅 위에 대량으로 쌓여 퇴적되었는데 3억년이 지난 후 갑자기 등장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중요한 에너지 원의 하나로 현대문명의 근간이 된 것이다. 현대의 플라스틱도 리그닌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합성해 만든 플라스틱은 생소하여 그것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거의 없어 썩지 않거나 썩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석탄기의 나무처럼 거대한 쓰레기가 돼 쌓이고 있는 것이다.

버려지는 리그닌, 탄소섬유 개발에 활용
오늘날 리그닌은 또다시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됐다. 스위스 렌징과 같은 레이온 제조업체와 제지산업은 목재에서 리그닌을 제거하고 셀룰로오스만을 추출해 종이나 레이온 섬유를 생산한다. 목재를 약제와 함께 고온·고압으로 삶아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리해 펄프를 만드는데 리그닌은 목재 성분의 20~30%나 된다. 그 때문에 추출된 리그닌이 고농도로 용해된 흑액(Black Liquor)으로 대량 발생된다.

흑액은 펄프공장에서 사용하는 스팀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연료로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펄프공장의 생산성에 큰 장애물로 대부분 폐기된다. 고대 식물의 리그닌은 썩지 않고 탄화돼 인류의 축복이 됐지만 현재의 리그닌은 쓸모가 거의 없어 99% 태워 버려진다. 이렇게 한 해에 버려지는 리그닌이 1억톤이 넘는다.   최근 리그닌으로부터 석유화학 대체 물질을 제조하려는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의 바이옴  바이오플라스틱사는 리그닌에서 유기화학물을 추출해 재활용이 가능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리머릭 대학교가 유럽의 다른 십여 개 연구소, 학교들과 컨소시엄으로 공동 연구 중인 리브레 프로젝트(Libre project)는 리그닌을 기반으로 한 탄소섬유의 개발이다.  식물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는 PLA나 PHA 같은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다. 셀룰로오스는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며 결코 쓰레기가 되지 않지만 리그닌은 분해하는데 오래 걸려 태우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따라서 바이오매스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원료로 리그닌을 사용하면 썩지 않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으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에서 셀룰로오스 활용보다 더 낫다. **리그닌은 열경화성 수지로 엄밀하게 플라스틱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최근의 플라스틱에 대한 개념은 확장돼 열경화성과 열가소성 수지 모두를 포괄하여 부르는 추세이다. 

[섬유지식] 셔츠와 바지에 가장 많이 적용되는 소재는 면인데 알다시피 면은 부드러운 대신 레질리언스(Resilience)가 나빠 구김이 심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면직물에 수지(樹脂) 처리를 해 구김을 개선하는 퍼머넌트 프레스(Permanent Press) 또는 링클 프리(Wrinkle Free)라는 가공이 있다. 수지(Resin)는 ‘나무의 기름’ 이라는 뜻이다. 수지는 부드러운 면의 셀룰로오스 사이에 끼어들어 단단한 뼈대를 형성해 구김 방지 역할을 한다. 합성수지는 원단이 너무 소프트(soft) 하지 않도록 적당한 강직성을 부여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Men’s wear원단은 너무 부드러우면 곤란하므로 적당히 하드(Hard)한 원단을 만들기 위해 수지가공이 필요하다. 합성수지는 나무 보강재인 리그닌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수지 가공은 자연을 모방한 바이오미믹스(Biomimetics)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