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기후위기, 대응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기후에 달려 가난한 사람들 기상이변 직격탄 ‘기후위기 한글폰트’ 등으로 인식 공유 … 합리적 생산·소비로 대응해야 공통의 인식과 실천은 가능

2023-11-10     윤대영
올해 11월 초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뉴질랜드 동쪽에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투발루라는 나라가 최초로 제안한 화석 연료 비확산 조약안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투발루 외교부 사이먼 코페 장관이 나서서 수도 푸나푸티 해안가 바닷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로 전 세계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재앙을 호소한 적이 있다.  해발고도가 최대 5m 정도인 투발루는 매년 0.5cm씩 물이 차오르고 있어 몇 년 안에 나라가 통째로 바다 밑으로 잠길 위기에 처해있다. 인구는 겨우 1만 1000여 명에 불과하고 섬 면적을 다 합쳐도 대략 서울시 종로구 만한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주권 국가의 흥망성쇠가 정치 군사 문제가 아닌 기후환경에 달렸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태풍과 홍수를 동반하는 폭우나, 지진으로 인한 해일 등 물의 자연재해는 파괴력이 엄청나고, 그 어떤 것으로도 막기 어렵다. 게다가 지리 특성에 따라 국지적으로 일어나던 물난리와 전혀 양상을 달리하는 해수면 상승은 모든 나라 모든 수변 도시가 직면한 두려운 미래다.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야 지구상에서 가히 일본을 능가할 나라가 없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일본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개 현 295km에 걸친 해안에다가 최고 높이 15.5m의 장벽을 세웠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대지진 해일도 버틸 수 있다는 이 제방에 들어간 돈은 한화로 12조 5000억 원이다. 거대한 제방이 바다 풍광을 가리고 생태 환경을 헤쳐도 그저 안쪽에서 답답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주민들의 반발을 억누르느라 고심했던 일본 정부의 속셈은 따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토건을 통한 경기부양? 게다가 장기과제였던 해수면 상승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했다는 칭찬을 듣는다면 일석이조다. 일본과 달리 돈이 없는 나라들은 이런저런 물난리에 속수무책이다. 올해 여름 폭우로 인해 전 국토의 1/3이 물에 잠긴 파키스탄의 경우 대다수 학자들은 기상 이변이 홍수의 원인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COP27에서는 선진국의 복구자금 지원 협의가 지지부진하다.
국가간 빠른 협력과 논의 진전을 위해 총회를 전후해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진단과 원인분석, 처방을 앞다퉈 발표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11월 3일자 ‘기후대응 격차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이 기후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3400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지금 선진국의 지원금은 겨우 10% 미만이다.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 전쟁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한글날을 맞아 새로 출시된 ‘기후위기 한글폰트’는 녹아내리는 얼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의미 있는 글자체다. 디자인은 핀란드 신문사 헬싱긴 사노마트가 무료로 배포한 라틴 폰트에서 차용했다. 이 글자체는 ‘1979’에서 10년 단위로 ‘2050’까지 총 8개다. 미국 국립 빙설자료센터(NSIDC)가 측정한 1979년부터 2019년까지의 북극해 빙하량 데이터에다 기후변화국가협의체(IPCC)가 예측한 미래 빙하량을 합친 수치를 글자의 두께에 적용한 디자인이다. 연도가 커질수록 글씨가 점점 얇아져 결국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글자를 통해 위기를 인식하고 환경을 지키는 실천을 다짐하자는 노력이다.  욕망에 따른 자원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현재 사회 구조상 당장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합리적 생산과 합리적 소비를 위한 공통의 인식과 실천은 가능하다. 국가와 기업이 화석 연료 사용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에 무력하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당장 이익을 위해 후손들의 미래를 저당 잡힐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희생과 헌신은 자식을 가진 부모들,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