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37)] 밀랍벌레의 영웅적 위업, 플라스틱을 먹다!
2023-11-10 안동진
우리의 생활공간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쓰레기는 태우거나 매립하는 등 적극적 처리 과정이 있지만 소멸하는 양보다 발생하는 양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에 환경에 큰 문제가 된다. 특히 인간이 만든 합성 플라스틱은 쉽게 썩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쌓이게 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을 분해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없기 때문이다. 3억년 전 썩지 않고 쌓인 나무들이 오늘날 석탄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플라스틱의 처리는 아직은 재생 비용이 많이 들고 태우면 유해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골칫거리다.
얼마 전에 두 종류의 밀랍벌레(Wax worm)가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을 먹고 소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폴리에틸렌은 우리가 비닐봉지로 알고 있는 합성 고분자이며 익숙한 플라스틱으로 주방에서 음식물 포장할 때 사용하는 투명한 랩이 바로 그것이다.
놀랍게도 밀랍벌레는 폴리에틸렌을 먹고 대사하여 폴리에스터를 만드는 원료 중 하나인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을 만든다. EG는 2가 알코올로 자연에서 빠르게 생분해 된다.
밀랍벌레는 ‘갤러리아 멜로넬라(Galleria mellonella)’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진 벌집나방 애벌레다. 벌집나방은 이름 그대로 벌집(Honeycomb)에 기생하는 나방이다.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것들이 벌집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벌집의 성분은 밀랍(蜜蠟)이다.
사실 한글인 밀랍보다 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왁스(Wax)일 것이다. 벌집의 주성분인 밀랍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양봉업자들에게 벌집나방은 해충으로 간주된다. 저장된 꿀을 흘리거나 오염시키고 꿀벌의 유충이 죽거나 질병 확산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먹는 게 지방이다 보니 밀랍벌레는 지방이 풍부해 아주 칼로리 높은 영양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낚시 미끼로는 최고이다. 낚시꾼들이 이 유충을 왁시(Waxy)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최초는 과학자이자 아마추어 양봉가인 페드리카 베르토치니(Federica Bertocchini)가 벌통을 돌보고 있던 2017년에 일어난 우연한 발견이었다.
스페인 생물학 연구센터의 분자생물학자인 베르토치니는 벌집이 밀랍 벌레로 가득 차 있어서 벌집을 청소하고 비닐봉지에 벌레를 넣었는데 잠시 후 봉지에 난 많은 구멍을 발견했고 흥미롭다고 생각해 자세히 관찰한 결과, 구멍들이 벌레가 씹어 생긴 것이 아니라 화학 분해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물론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주역은 애벌레 자체가 아니라 모든 썩는 것들의 원인인 박테리아 다. 생소한 이름을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Enterobacter asburiae’ 와 ‘Bacillus sp’ 두 박테리아가 PE를 분해한다.
실험실에서 약 100마리의 밀랍벌레가 12시간 동안 거의 0.1 그램의 PE 비닐백을 분해하였다. 사실 그것들이 먹어 치우는 PE의 양에 비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하는 양이 훨씬 더 많은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이 부분이 우리가 연구하여 개량할 과제이다. 인류는 매우 높은 수준의 우생학과 유전공학 연구분야와 인재풀을 보유한다. 대사량이나 효율을 늘리고 동종 개체 수를 늘리는 한편,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다른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유사종으로 개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폴리에틸렌은 융점이 낮은 약한 플라스틱 중 하나이고 재생이 쉬운 고분자이며 현재 모든 플라스틱 생산의 30%를 차지한다. 인류는 또 다른 석탄기를 맞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