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왈“보기싫고”“듣기싫어”“말하기싫네”…조
2000-04-17 한국섬유신문
▼이따금 TV앞에 앉으면 땅에 떨어진(?) 「시민의식」
바로잡기 캠페인이란 것들이 심심치않게 방영되고 있
다.
늦은감은 있으나 잘못된 사회통념이나 그릇된 생활습성
을 스스로들이 깨우치고 교정해주기를 언론매체나 사회
단체에서 목소리를 한데 모아 높이고 있어 부끄러운대
로 박수와 공감을 보낸다.
그러나 그 「치부(恥部)」를 좀 더 깊게 하나하나 꼬집
어 내어 구체적으로 열거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줬으
면 하는 심정이다.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됐나?”하는 장탄식이 하루
에도 수없이 터져나오기에 공자(孔子) 말씀이 아니더라
도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말하기 싫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내버려둘 수많은
없지않은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릇된 것들을 올바르게
잡아 줘야 할 것이다. ─한민족이니까─
지하철이나 극장같은 공공장소에서 「껌」을 딱딱 소리
내고 씹던 대학생풍의 젊은이들이 이맛살을 찌프리게
하더니 이제는 「휴대전화」가 그 대신 자리잡고 말았
다.(소리내는 껌 정도를 넘어섰다.)
차속에서 CD를 들을 때도 <이어폰>에서 싸각싸각 소
리가 새어나오지않게 조심해야할텐데 옆사람은 아랑곳
없다. 또 앉을 때도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앉으면 남보
기에도 예쁠터인데 그렇지 못하다.
남성인 경우에는 두 다리를 쩌억 벌리고 앉는 게 보통
이다. 보기도 흉할뿐 아니라 더울 때는 옆사람에게 폐
가 된다. 무릎은 모으는 것이 예의다.
신문을 읽을 때도 좁게 네번쯤 접어서 자기 가슴앞에다
펴야한다.
▲이러한 것들은 아주 사소한 일들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만일 이렇게 사소한 일들마저 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들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만한 노릇)」가 아니냐?고 묻고
싶다.
─차를 타고 갈때도 눈에 거슬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
니다. 차선을 무시하고 <깜빡불>도 안켠채 별안간에
앞으로 끼어드는가하면 한손으론 휴대전활 걸고 있다.
또 운적석 창밖에다는 담배를 꼬나들곤 탁탁 재를 길에
다 털어가며 「신사(?)」인냥 거들먹거리며 달리는 모
습을 볼 때 한심한 나머지 과연 제집안에서도 저럴까?
싶어 울화가 치민다.
▲근자에는 부쩍 「신지식인」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모름지기 <신지식인>이란 학벌이나 출생지가 문제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예의> 바르고 진취적인데다 나
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해서 이웃에게 폐가 안되는
언행(言行)으로 솔선수범하는 주인공을 일컫는 말로 안
다.
그러나 이 신지식인(新知識人)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는 안는다. 오랜동안 스스로 깨우치고 공부하고 더불어
생활습성화하는 <훈련>의 소산이란 것을 안다.
▲툭하면 <지연> <학연>을 들먹이며 수단방법을 안가
리고 높은 자리에 기어올라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
람이거나 불로소득등 남의 눈가림으로 해서 외제차나
몰고 다니며 사치풍조에 젖어드는 <무리>들과는 근본
적으로 차별화되는 「인간상」이야말로 <신지식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