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41) - 재생 폴리에스터는 더 이상 없다

2024-01-12     안동진
재생 폴리에스터(Recycled Polyester)와 비불소 발수제(PFCs Free W/R agent)는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 주제로 입문하는 첫 단계인데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패션산업의 3대 지속가능성 기준(Sustainability Criteria)인 ‘친환경’, ‘건강’, ‘자원절약’이라는 명제를 소비자에게 가시적·직관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 폴리에스터는 친환경과 자원절약이라는 이타적이면서 미래시제인 두 주제를, 비불소 발수제는 소비자 자신에게 즉각 반영되는 ‘건강’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 외에 물을 사용하지 않는 염색이나 썩는 플라스틱 그리고 바이오매스(Biomass) 기반 화섬 같은 탁월한 서스테이너빌리티 관련 소재들이 있지만 아직은 적용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상승되는 가격 대를 대다수 소비자가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들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왜 PET병인가
모든 브랜드가 재생 폴리에스터에 가장 관심을 두는 이유는 아주 적은 비용 때문이다. 원래 원단 가격의 10% 내외로 충당이 가능하다. 재생 폴리에스터 생산 비용이 이처럼 저렴한 이유는 바로 최선의 원료 때문이다. PET병은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진다. 정확하게 폴리에스터 원단 성분과 똑같다.

폴리에스터는 PET, PTT, PBT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은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이다. 따라서 PET병은 아주 순수한 폴리에스터 덩어리인 것이다. 

사용하고 버려진 의류의 재생은
의류 원자재로 사용된 폴리에스터 원단은 전처리, 염색, 후처리, 가공을 거치면서 합성염료뿐만 아니라 각종 케미컬이 떡칠되어 있다. 따라서 사용된 의류를 재생하려면 다양한 화학반응을 동반한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재생을 화학적 재생(Chemical Recycle)이라고 한다. 비용이 최소 3~4배는 된다.

반면 투명한  PET병은 그 자체로 염색은 물론 가공이나 어떤 화학약품도 투입되지 않은 순결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열로 녹여서 실로 뽑으면 끝이다. 이런 재생을 물리적 재생(Physical Recycle)이라고 한다. 비용이 저렴한 직접적인 이유이다. 

왜 재생 나일론은 보기 힘들까
폴리에스터에 비해 재생 나일론을 주위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는 PET병 같은 순수한 재료가 나일론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물리적 재생이 불가능하다. 나일론도 마찬가지로 사용된 의류에서 재생하는 화학적 재생비용은 막대하다. 따라서 나일론은 제조공장에서 나오는 낙물(Waste)을 수거하여 재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재생 나일론은 물리적 재생이므로 비용은 저렴하지만, 소비자가 사용한 적이 없는 프리 컨슈머 프로덕트(Pre-Consumer Product)로 분류되어 사실상 서스테이너빌리티 관련 효과가 희미하다. 그에 비해 폴리에스터는 소비자가 사용한 후 버려지는 쓰레기를 재사용하는 완벽한 포스트 컨슈머 프로덕트(Post-Consumer Product)다. 
사진=정정숙

재생 폴리에스터의 종말
문제는 패션산업과 PET병의 밀월관계가 다음의 5가지 이유로 인하여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1. 수요팽창_지금은 메이저 브랜드들만이 서스테이너빌리티에 관심 있어 수요가 크지 않지만 머지않아 모든 브랜드가 의무적으로 서스테이너빌리티를 시행해야 하는 때가 온다. 수요는 폭발할 것이다. 이는 즉시 가격에 반영된다. 

2. 공급감소_수요가 많으면 더 만들면 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이지만 합성 플라스틱의 증산은 장려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급감소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3. 매점매석_면 가격이 10배 가까이 치솟은 예전의 면 파동은 일부 투자자의 매점매석 행위 때문이었다. 투자 대상으로서의 PET병 쓰레기는 넓은 땅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유리하다. 즉, 중국의 매점매석이 유리하다. 이는 가수요를 불러 수요팽창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가격의 급상승을 불러올 것이다. 

4. 여타 산업_패션이 아닌 다른 모든 산업도 서스테이너빌리티 압력을 받고 있고 플라스틱의 재생은 모두에게 값싸고 좋은 마케팅 재료이다. 이들 역시 수요에 가담하게 만든다. 

5. 클로즈드 루프 리사이클링(Closed Loop Recycling)_가장 심각하게 문제되는 이슈이다. PET병 쓰레기를 PET병으로 재생하면 이후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재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섬유로 재생하면 재생 사이클은 끝난다. 기술적으로 재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닫힌 고리 재활용(Closed Loop Recycling)이라는 압력이 거세지면 재생 폴리에스터의 종말이 오게 된다. 사용 가능한 재료가 의류 쓰레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값비싼 의류 쓰레기의 화학 재생이 시작되려면 비용을 낮추기 위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하므로 단시일에 적용하기 어렵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패션 브랜드는 다른 대안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물 없는 염색, 썩는 플라스틱 또는 바이오매스 기반 화섬 등이 그것이다. 추세는 점점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