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패션, 박물관서 역사적 블록버스터되다

2024-02-09     김임순 기자
패션은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발전한다. 언제 봐도 남다르다. 그것을 ‘찰나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섬세하게 제작되는 오트 쿠튀르에 사용되는 자수, 비즈, 오간자는 더 쉽게 손상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동안 패션은 여성의 가벼움으로 치부되었다. 박물관은 이러한 단편적인 이유로 이를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왔을까? 때마침, 우리나라 근현대사 패션 1세대 디자이너 최경자, 노라노, 앙드레 김의 작품들에 아카이브를 포함 60여 벌의 의상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최경자는 1937년 국내 최초로 함흥에 양장점 ‘은좌옥’을 열고, 2년 뒤 국내 최초의 패션전문교육기관 ‘국제패션스쿨’, 대한복식디자이너 협회, 국제차밍스쿨을 설립하는 등 패션 인재 양성에 힘썼다. 국제패션스쿨을 졸업한 ‘앙드레 김’ 디자이너는 국내패션을 해외시장에 알리는데 노력해 왔다. 1965년 ‘살롱 앙드레’를 설립, 이듬해 한국인 최초로 파리 패션쇼를 열며 한국패션을 전파했다. 노라노 디자이너는 미국 유학파로 1952년 명동 ‘노라노의 집’을 오픈, 1956년 국내 최초로 반도호텔 패션쇼를 열었다. 아직도 미국 수출의류 패턴을 챙기기도 한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소장품을 기증받아 최경자, 앙드레 김, 노라노 등 1세대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복식을 ‘의(依)·표(表)·예(藝)’ 테마별로 나눠 ‘입다, 드러내다, 표현하다’로 제안했다. 가장 볼거리가 풍성한 앙드레 김 작품은 특유의 화려한 패턴, 자수, 아플리케 기법을 활용한 드레스와 수트 ‘80~90년대 그의 패션쇼를 보는 듯 장관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연미복과 모자, 구두 전시는 1960년대 미국 케네디 대통령 연미복 사진을 연상시킨다.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 해외 4대 패션위크에 최신 트렌드만 좇다가 193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복식에서 흐름은 박물관 나들이를 통해 향기에 빠져볼 수 있다. 최경자 디자이너의 코트 드레스나 타이넥 드레스, 이브닝드레스는 오늘 입어도 소화할 수 있을 법한 느낌이다.  
해외 패션박물관은 성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등 대형 미술관들이 잇따라 패션 전시를 열고 기록적 방문객을 불러 모은다. 이는 박물관 관람객들이 패션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고 하나의 역사적인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물관과 같은 재단의 영구적인 컬렉션에 의류가 포함된 것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수집하고 전시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패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패션 하우스의 많은 고객과 더불어 재력을 갖고 있으면서, 역사를 보는 방법으로 패션을 바라보고 소비하며 보존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랜드가 전세계 유명인들의 패션 소장품 200점을 공개한 것도 화제다. 국내 패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연말부터 내달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셀럽이 사랑한 Bag&Shoes’전이 열린다. 이랜드뮤지엄이 30년간 수집한 소장품 50만 점 중 세계적 스타와 유명인사의 신발과 가방 등 패션 소장품들을 엄선했다. 할리우드 스타와 스포츠 스타, 저명인사의 패션 소장품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라 셀럽 자신의 심미적 자아 표현 수단으로 통하기도 한다. 아이템 자체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담기 때문이다. 패션이 박물관에서 주인공이 되는 시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드영 박물관은 2024년 1월, 잔 매그닌, 엘리너 드 기뉴, 낸 켐프너, 도디 로즈크란스, 크리스틴 서피스 등 20~21세기 가장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의 유산을 기리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남성들도 한없는 가벼움의 패션을 찾아나서는 시대, 박물관은 찰나를 놓치지 않은 패션수집가들을 찾아내야 한다. 대한민국에 패션박물관은 없지만, 패션 컬렉터는 더 절실해 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