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장의 예의…박세은기자

2000-04-10     한국섬유신문
패션이라는게 디자이너와 패션기업의 문화며 정신이 투 영된 무대연출과 작품이 쇼라는 매개체에 걸러지는 작 업이 동반됨으로 그제서야 살아숨쉬는 생명체의 재역활 을 하게 된다. 거창한 문장을 늘어놓았지만 진열대의 상품은 패션이라 고 볼수 없으며 인체와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패 션”이 완성됨은 당연한 주장이 아닌가. 그런 살아있는 “패션”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 패션쇼 장의 관람자들은 무대의 화려함 비해 너무나 경직돼 있 다. 물론 언론인들은 취재를 위해, 존경심 많은 고객들은 작품을 감상한다는 이유에서 심각해질 수 있는 자리지 만 요즘같이 개방적인 플로어쇼나 퍼포먼스를 겸한 자 유로운 무대연출이 성행하고 있는 현실에 어울리지 않 는 경직된 관람객들은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무척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동료기자들은 발표되는 옷보다는 패션쇼장의 분위기를 먼저 파악하고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즐거운, 말그대로 SHOW를 즐기 려고 노력한다. 펜을 꼿꼿히 들고 뭔가 캐내려는 듯 눈의 핏발을 세우 기 보다 의자에 앉은채로 들썩이거나 고개를 까딱이다 가 더 흥이나면 뒤편에서 온몸으로 쇼장의 분위기에 몰 입하는 것이다. 쇼를 주관하는 디자이너나 업체에게는 패션쇼에 압도되 거나 무신경함보다 분위기에 맞춰 신나하는 관객들이 자신의 옷을 즐겨주는 사람 만큼이나 반가울 것이다. 오랜동안 파리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2번째 콜렉션을 가 진 한 디자이너는 퍼포먼스형식으로 진행될 자신의 패 션쇼에 『즐기러 와달라』고 초청장을 건냈다.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쇼는 충분히 ‘즐길만한 가치’ 가 있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흥겨워할 수는 없었지 만(공간이 협소했던 관계로) 들뜨는 기분만은 막을 수 없었다. 한국인의 경직성. 국제 영화제에 참석해 예의를 갖춘다고 곤색 정장, 넥 타이 차림으로 때지어 몰려다니다 마피아로 오해받은 국내 영화관계자들, 투자를 위해 스필버그 감독에게 검 은 정장차림의 협상단을 보냈다가 잔뜩 거부감만 안겨 주고 거절당한 어느 대기업의 예는 한국인의 경직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좋은 예다. 비단 영화라는 예술분야만에 국한된 경직성이 아니다. 신규브랜드 런칭시즌과 국내 패션계의 큰잔치 「서울패 션위크」를 앞두고 크고 작은 패션쇼가 기획되고 있다. 보다 앞서가는 문화를 만나는 자리, 잔치상을 차리고 풍악을 울려주는 그 자리에서 맛나게 밥숟가락을 놀리 며 흥겨움에 장단맞춰주는 예의바른(?) 관람객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박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