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 (45) -“섬유염색 미래는 염색하지 않는 것”
2024-03-16 안동진
섬유 염색의 미래는 섬유와 원단을 염색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종이 없는 디지털 신문 또는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로 업그레이드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요즘 사진을 현상된 인화지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관하려면 두꺼운 앨범이 필요하고 사진은 갈수록 색이 바랜다.
필름 카메라는 수시로 탄창을 갈아 끼워야 하는 권총처럼 비싼 필름을 장전하지 않으면 쓸모 없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다. 디지털 카메라는 배터리만 충전하면 무한정 발사되는 레이저 총과 같다.
최근 패션 브랜드의 가장 큰 관심사가 재생 합섬(Recycled Synthetic)이 된 것 같다.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를 좇아가기는 해야 하겠는데 개념을 모르니 마땅한 아이디어는 없고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공해보다는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이라는 소중한 자원의 낭비와 오염의 폐해가 그보다 백배는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반도 8배 크기인 태평양의 쓰레기 섬은 보는 즉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더럽혀진 물은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워 간과하기 쉽다.
1856년에 윌리엄 퍼킨이 발명한 합성염료는 인류와 패션산업에 안겨준 축복이었다. 하지만 현대 섬유염색 기술은 원시적이다 못해 참혹하다. 소중한 수자원이 피염물의 100배나 필요한 극단적인 저 효율로 자원의 낭비와 공해가 심각하다.
원단에 화학적으로 착색하는 기술은 이제 특이점을 만났다. 합성염료와 화학반응을 통한 염색이라는 아날로그 기술은 디지털 착색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특이점이 열리는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기 전에 염색하지 않고 원단을 착색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될 것이다.
Dope dyed(원착염색)는 그런 기술 중 하나이고 소량을 처리하는 기술이 나오면 모든 브랜드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재생염색도 무염 착색을 위한 아이디어이다.
재생 염색이라니? 염색된 원단을 탈색해 빠져나온 염료를 재사용한다는 뜻일까? 아직 그 정도의 기술은 없으며 별로 쓸모도 없다. 재생염색은 한번 염색된 원단이나 의류를 이용해염색공정 없이 필요한 색상으로 원단에 착색을 하겠다는 기술이다.
이탈리아의 만테코(Manteco)는 버려진 울(Wool) 의류를 컬러 별로 분류해 마치 염색 전에 삼원색 염료로 레시피(Recipe)를 만들어 원하는 컬러를 조색(Matching) 하는 것처럼 컬러별로 분류된 재생모를 염료 대신 레시피에 따라 믹스해 필요한 색상을 만들었다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물론 삼원색 재생모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입자를 균일하게 믹스할 수 있는 물이라는 용질이 없어 단지 염료 가루를 섞어 컬러 매칭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컬러에 제약이 있고 멜란지(Melange) 효과가 날 수도 있으나 염색없이 원하는 컬러를 비슷하게 만든다는 발상은 탁월하다.
재생모를 컬러별로 분류해 염색 없이 리사이클 울(Recycled wool)을 제조하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한다.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 때문이 아니라 울 소재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기술은 블랙(Black)이나 네이비(Navy) 같은 특정 컬러로 한정돼 있으며 컬러 매칭(Color matching)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종의 컬러를 분류해 사용한다는 면에서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만들었다는 다양한 컬러의 방모 원단들이 있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측면과 염색없이 원단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매우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 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이 염색의 미래가 되거나 공해를 일으키는 화학염색의 구세주가 된다거나 혹은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 염색의 대세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미약하지만 화학염색으로 인한 수자원의 낭비나 오염, 공해를 일부 줄여줄 뿐이다. 모두가 작으나마 모든 면에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