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 (50) -극지에서 살아남기

2024-06-01     안동진 교수

인간이 혹한의 시베리아나 툰드라 동토까지 삶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보온대책 때문이다. 하지만 극지는 유일하게 인간의 영토가 미치지 못하는 불모의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그런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북극곰 같은 극지동물은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베르크만의 규칙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들이 사는 곳이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 뿐 아니라 근처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바이킹 후손들은 예외 없이 키도 덩치도 크다. 반면 더운 지방으로 가면 대체로 작아진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베르크만의 규칙이 보여주는 멋진 예이다. 항온동물이 외부로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면 부피대비 피부면적이 작을수록 유리하다. 즉, 비표면적이 작을수록 유리하다. 덩치가 큰 동물이 바로 그렇다. 더운 곳은 반대이며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을 베르크만의 규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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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의 규칙
크든 작든 날씬한 북극곰은 없다. 모든 북극곰의 체형은 뚱뚱하다. 이것도 이유가 있다. 가늘고 날씬한 체형보다 둥글고 뚱뚱한 체형이 같은 부피일 때 표면적이 더 작기 때문이다. 이것이 알렌의 규칙이다. 뚱뚱한 체형이 추운 곳에 살기 적합하다. 

흰색 털
극지동물에게 숱이 많은 긴 털은 필수이다. 그런데 북극곰의 털은 왜 흰색일까. 색깔만 본다면 흰색은 모든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반사하므로 일조량을 감소시켜 보온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일조량이 많은 더운 지방의 집들이 대개 흰색인 이유이다. 외벽의 백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해 집을 시원하게 만든다. 
최근에 개발된 세상에서 가장 흰색인 슈퍼 화이트(Super white)는 햇볕의 95.5%를 반사해 건물 외벽의 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즉, 북극곰의 흰색 털은 보온에는 기여하는 바가 없으며 진정한 목적은 까모플라쥬(Camouflage) 위장색인 것이다. 온 세상이 새하얀 극지방에서 금방 눈에 띄는 검은 색 동물은 피식자라면 쉽게 잡아 먹히고 포식자라면 굶어 죽게 만들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든 극지동물에게 흰색 털은 타협이 불가능한 절대 생존조건이다. 

검은 피부
보온을 위해 항온동물이 동원할 수 있는 두 가지 대책은 소중한 자원을 투입해 유지하는 체온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능한 붙잡아 두는 동시에 외부의 차가운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단열 그리고 내리쬐는 햇빛의 복사열을 가능한 많이 수집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흰색 털은 복사열을 흡수하는 데는 도움되지 않으므로 다른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 
북극곰은 각각 다른 일을 수행하는 겉털(Topcoat)과 속털(Undercoat) 두 종류의 털로 무장하고 있다. 굵은 털로 구성된 톱코트(Topcoat)는 외부의 냉기를 차단하며 언드코트(Undercoat)는 체온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북극곰의 털은 속이 비어 있는 중공모이다. ‘털’이라는 케라틴 단백질보다 열전도율이 낮아 더 우수한 단열재는 공기이다. 북극곰의 비어 있는 털 내부는 공기로 가득 차 있고 따라서 단백질로 채워진 털보다 더 우수한 단열 성능을 보인다. 

이만 해도 훌륭하게 건설된 막강한 보온장치인 것 같지만 극지방에서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털 있는 대부분 동물의 피부색은 흰색, 정확하게는 무색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극곰의 피부색은 검은색이다. 피부가 검다는 것은 멜라닌이 많다는 뜻이고 멜라닌은 빛을 잘 흡수하는 단백질이다. 
즉, 흰색피부보다 빛을 훨씬 더 잘 흡수한다. 북극곰의 몸에서 외부로 방사되는 적외선은 흰털에 부딪혀 반사되어 몸으로 되돌아온다. 이때, 흰 피부보다 검은 피부가 반사된 적외선을 훨씬 더 잘 흡수한다. 자외선을 막기 위한 인간의 검은 피부와 기전은 같지만 결과는 각각 ‘자외선 차단’과 ‘보온’으로 전혀 다르게 기능한다. 그들은 결코 춥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