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 (52) -디지털 위장복 도입 이유…황당한 6조의 실수 (하)

2024-06-29     안동진 교수
미 육군은 50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범용 위장 패턴UCP’를 처음 도입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교체할 예정이다. 회색과 녹색 얼룩을 픽셀 패턴으로 결합한 이 디자인은 사막과 온화한 지형에서 군인을 똑같이 잘 위장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위장이 두 환경 모두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육군이 해병대보다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듀얼 텍스(Dual-Tex)’의 획기적 장점에 도취돼 미군이 2005년에 야심 차게 도입한 새로운 픽셀위장패턴인 UCP(Universal Camouflage pattern)는 오히려 군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장비로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판단됐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유니버설 위장 패턴은 검은색이 빠진 회색, 베이지색, 녹색을 기본 색상으로 사용했다. 사막과 온대 지형 모두에서 군인을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고안된 것이다. 최초의 디자인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만들어졌다. 당시 파병된 군대에는 사막 위장복이 지급됐다. 이 위장복은 대부분 사막 배경에서 갈색 색조가 부족해 다른 장비들이 위장복보다 더 어둡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플랙(Flak) 재킷을 비롯한 어두운 색상의 장비가 밝은 색상의 군복과 대비돼 병사들이 위험할 정도로 눈에 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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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휘도 효과

또 다른 문제는 등휘도 ‘Equilumi-nance’ 또는 ‘isoluminance’라는 광학적 효과였다. 등휘도 효과는 같은 휘도를 가진 색상이 결합할 때 나타난다.
휘도는 명도와 비슷한 개념인데 광도나 조도와 구분해야 한다. 광도는 광원에서 방출되는 특정방향에 대한 빛의 세기이고 휘도는 어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의 양이다. 즉, 휘도는 우리 눈이 물체로부터 받아들이는 빛의 세기이다. 명도는 인간이 느끼는 겉보기 밝기를 백색 면 기준으로 단순 척도화 한 것이다. 

우리 눈은 같은 휘도인 색이 섞인 패턴을 만나면 위치를 지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등휘도로 표현된 그림이나 패턴은 명멸하듯 진동하거나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효과가 전투 지역에서 발생하면 멀리 있는 병사를 오히려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은 리처드 아누스키우이츠(Richard Anuszkiewicz)의 그림을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물체가 3D로 표현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휘도 차이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등휘도로 표현된 물체는 아래 3번째 공처럼 2D로 보이게 된다.
UCP에 검정색이 포함되지 않아 등휘도가 강조됐고 3D인 주위 환경에서 위장복만 홀로 2D로 보이게 돼 위장복을 입은 군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적용하는 색에 따라 패턴이 다르게 나타나는 복합적인 광학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휘도 차이를 극단적으로 크게 만들어 위장 효과가 생기는 ‘눈부신 위장’ 이라는 뜻의 ‘대즐 카머플라주(Dazzle Camouflage)’ 라는 것도 있다. 바로 얼룩말 무늬 같은 패턴이다. 이 위장패턴은 물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어떤 모양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함선의 위장색으로 많이 적용됐다. 물론 이후 레이다의 발명은 해군의 위장패턴 자체를 전혀 쓸모없게 만들었다. 

대즐(Dazzle) 위장을 군복에 적용한 예도 있는데 바로 스나이퍼 위장이다. 군인들이 얼굴에 바르는 위장크림도 대즐 위장의 한 종류에 속한다. 
등휘도 같은 문제가 있는 색조합은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UCP를 적용하기 전에 디자인에 대한 테스트가 없었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수행된 연구에서 유니버설 위장 패턴보다 더 효과적인 네 가지 다른 위장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해병대 데저트 디지털, 데저트 브러시, 멀티캠, 시리아 군용 패턴은 모두 병사를 은폐하는 데 UCP보다 16-36% 더 효과적이었다.

새로운 패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육군은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전투를 수행중인 아프가니스탄의 병력에게는 임시로 멀티캠 위장복이 제공됐다. 멀티캠은 디지털 패턴이 아닌 9가지 컬러로 이루어진 전통의 위장 패턴이다. 
2014년 7월, 미육군은 OCP가 군복에서 UCP를 대체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패턴은 차분한 녹색, 밝은 베이지, 짙은 갈색의 멀티캠과 비슷하지만 베이지와 갈색 패치가 적고 픽셀이 없어진 것이다. 공식명칭 OCP 패턴은 2019년 10월 1일까지 육군복의 UCP 패턴을 완전히 대체했다. 단지 패턴 하나를 실수로 만든 댓가로 6조 7000억원을 날린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2007년 미해병대의 픽셀 패턴인 마펫(MARPAT)을 그대로 적용해 특전사에 보급하였고 2010년부터 자체로 디지털 위장복 패턴을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픽셀패턴 위장복을 퇴출하기로 결정한 2014년에 전군이 픽셀패턴으로 교체됐다. 만시지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