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시간의 관점으로 경제를 재정의하라, ‘분초사회’

2024년 전망 첫 번째 키워드는 ‘분’과 ‘초’ 단위로 소비하는 분초사회 … 시간 압축 사용하고 많은 경험 원해 실패 피하려는 현상, 요약 콘텐츠 본다 각자 입맛대로 편집 ‘반반반차’ 등장

2024-10-12     권정윤 연구위원

‘그럼 5시 47분에 만나’
수업이 끝난 학생이 친구와 통화로 만날 시간을 정하며 위와 같이 얘기했다. 5시 30분도, 45분도 아닌 5시 47분이라는 숫자가 인상적이다. 수업이 5시 40분에 마치는데 가방을 챙겨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 건물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대략 7분이 걸리기 때문에 47분이면 적절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1~2분이라도 누군가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싶은 마음이 분 단위 약속시간으로 표현된 것이다. 

분(分)뿐만 아니라 초(秒) 단위도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예를 들어,사람들은 유튜브를 시청하며 전체 영상 중 원하는 장면이 몇 분 몇 초에 등장하는지 ‘좌표’를 찍어주는 ‘타임스탬프’ 기능을 자주 활용한다. 단 몇 초라도 필요치 않은 내용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초 단위로 정확한 지점을 알려준다.  ‘분초를 다투며 산다’는 말은 이제 단순한 관용어가 아니게 됐다. 소비자들은 일상 전반에서 ‘분’과 ‘초’ 단위로 소비하고 시간 대비 가치, 즉 ‘시성비’라는 효율을 중시한다. 이러한 변화된 경향성을 ‘분초사회’라는 트렌드로 표현하고자 한다. 필자가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 2024년을 전망하며 선보인 첫 번째 키워드이다.  첫 번째 현상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려 한다. 스마트폰에서 영상, 메신저, SNS, 포털 등 한 번에 여러 창을 띄워놓고 동시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멀티 윈도우’ 기능이 대표적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때 필수 기능이 된 ‘배속 시청’도 이에 해당한다. 영상을 ‘1.5배속’처럼 속도를 높여서 시청하는 기능을 말하는데, LG유플러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VOD를 시청하는 고객 중 39%가 표준 속도보다 빠른 배속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심지어 29%에 달하는 시청자는 2배속 이상으로 시청 속도를 높게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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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실패를 극도로 피하려 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가 재미있을지 알기 위해 앞부분을 시청하고 판단했다면 이제는 감상평은 물론 결말까지 모두 포함된 요약본 콘텐츠를 먼저 찾아본 후 ‘정주행’할지 판단하는 식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행동은 콘텐츠 소비만이 아니라 음식점을 방문할 때도 ‘찐’ 후기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나타난다. 필터를 씌우지 않은 리뷰 사진을 찾거나, 낮은 평점 순으로 후기를 정렬하여 확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양상은 시간을 각자 입맛대로 편집한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가 대표적이다.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연차’는 기본적으로 하루 단위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반나절만 사용하는 ‘반차’로 쪼개어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반반차’, 나아가 1시간 단위로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반반반차’까지 등장했다. 출퇴근 시간부터 점심시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시간 구조 속에 살아온 직장인들이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를 계기로 시간을 재량껏 편집하는 생활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분초사회의 도래는 우리 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 중심의 소유 경제에서는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금전 자원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 경제에서는 귀한 경험을 얻기위해 돈은 물론이고, 시간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자원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험 경제가 무르익으며 볼거리·놀거리·먹을거리 등 경험할 거리가 무척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돼 있으나 시간을 쓰고 싶은 곳이 많아지면서 한 번의 실패가 가져오는 손실이 크게 느껴진다. 어렵게 표현하자면 시간의 기회비용이 커진 것이다.  이제 각 산업은 시간의 관점에서 소비자의 경험을 들여다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의 니즈가 발생하는 시점에 맞추어 즉각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재고를 준비해두고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온디맨드 서비스가 있다. 즉, 좋은 제품이라는 결과물만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제품이 전달되고 사용되는 전 과정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