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섬유패션업계는 경기침체의 3고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여파가 여전히 시장을 지배했다. 일정 수요층을 가지고 있는 럭셔리 시장조차 초기에 호조를 보였을 뿐 하반기부터는 수요 약화로 판매실적이 둔화됐고, 이는 섬유패션업계 전반에 걸쳐 2024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과 맥킨지 앤 컴퍼니가 분석한 2024년 패션산업 보고서를 보면 업계 임원들이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불확실성’ 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환경에 2024년 역시 더 많은 어려움과 역풍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평균 인플레이션율이 지난해 6.9%에서 올해에 5.8%로 완화될 걸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맥킨지는 올해 패션시장을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2~4% 매출 신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1~2% 낮은 수치로 유럽과 중동의 분쟁 등 지정학적 요인 속에 불안하고 불확실성한 경제가 여전히 지출을 억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맥킨지는 섬유패션시장에서 도전해야 하는 과제, 테마로 10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본 ‘분열된 미래 (Fragmented Future)’, 둘째는 극심한 기상이변이 불러올 패션산업 변화 ‘기후 위기의 긴급성 (Climate Urgency)’, 셋째는 펜데믹 이후 여행 활성화에 따른 ‘휴가 모드 (Vacation Mode)’,
넷째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스의 새 얼굴 (The New Face of Influence)’, 다섯째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기능성 ‘아웃도어의 재창조 (Outdoors Reinvented)’ 이다.
여섯째는 AI가 자동화를 넘어서 크리에이티브 작업까지 향상시키는 ‘제너레이티브 AI의 창조적 교차로 (Gen AI’s Creative Crossroad)’, 일곱째는 새로운 도전자들의 더 심해진 속도 경쟁 ‘패스트 패션의 파워 플레이 (Fast Fashion’s Power Plays)’, 여덟째는 다시 강화되는 ‘브랜드 파워 집중 (All Eyes on Brand)’, 아홉째는 자율규제가 막을 내리고 패션업계에 나타날 새로운 규정 ‘지속 가능성 규칙 (Sustainability Rules)’ 열 번째는 소비자 수요의 작은 변화가 도매, 유통, 제조, 원자재 공급업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용어인 ‘채찍 효과의 반격 (Bullwhip Snaps Back)’ 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조금 더 희망적으로 봤다 “2023년은 잠시 숨을 고르는 브레이크 포인트(Breakpoint) 였다면, 2024년은 게임을 끝낼 마지막 한방을 위한 투수의 준비 동작처럼 크게 팔을 뻗는 ‘와인드업’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와인드업(WINDUP) 즉 ‘마무리 짓기’를 키워드로 제안 한다”.
펜데믹을 거치며 더욱 중요해진 건강한 삶에 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황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익성’을 최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미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국내 마켓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고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시장에 도전해야 할까?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곳이 세계 5대 패션시장으로 성장한 스페인 시장이다.
‘ZARA’로 알려진 ‘인디텍스(INDITEX)’의 경영 전략이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말까지 매출은 전년 대비 11.1%, 순이익은 32.5% 가 늘었다. 순 자산 기준 스페인 1위 기업이다.
인디텍스는 Gap 이나 H&M 이 의류디자인과 판매에만 몰두했다면 의상 콘셉트 디자인부터 물류, 매장 진열까지 일원화 통합에 투자했다.
단적으로 기존의 의류제품이 디자인 콘셉트부터 생산되어 매장에 진열되는 데 평균 40주가 걸리는 시간을 2~4주로 단축했다. 패스트 패션, ‘속도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또 매장 내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 디자인과 제품생산에 반영하는 온 디맨드(On Demand) 전략, 첫 주에 매출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제품들을 곧바로 철회하는 전략도 차별화된다. 온오프라인 활용 방안을 보면, 오프라인의 경우 무광고 전략과 고객 체험을 중시하는 매장 투자로, 타 경쟁사가 전체 매출의 3~4%를 광고비용으로 지출하는 반면 ZARA는 0.3%만 지출하고, 대신 럭셔리 그룹에 준하는 쇼윈도 비쥬얼 마케팅에 투자했다.
연간 3~4번의 고객 방문이 이뤄지는 타 매장보다 매달 바뀌는 매장 내 신제품들로 ZARA 매장은 연간 고객 1인 평균 17번의 방문수를 기록했다.
또 수익률이 낮은 매장은 과감히 정리하고, 온라인 플랫폼 개발에 27억 유로를 이미 투자해 온라인 판매 비율을 2024년 30%까지 늘릴 계획이다.
인플루언서와 고객들의 소셜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위기 요인도 있다. 유럽연합에서 환경오염에 주범이 되는 ‘패스트 패션’에 제동을 걸고 있고, 2030년까지 모든 의류제품에 재활용한 섬유를 함유하도록 법안을 추진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섬유폐기물 처리가 관건이다. 인디텍스는 일단 2030년까지 전체 소재의 40%를 재활용 소재, 25%는 차세대 신소재, 25%는 유기농 및 재생농업 소재, 10%는 textile을 사용하겠다는 행동영역을 발표했다. 이 기업의 전략을 보면 공교롭게 맥킨지가 전망한 2024년 10가지 테마에 부합하고 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현재 어떤 프로세스에 와 있을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디텍스의 사례는 이미 장단점을 접수했고, 그 이상의 더 발전적인 변화와 목표를 세우고 있을 것이다.
다만 모든 전략이 그렇듯 ‘결과’가 말해줘야 한다. 2024년 한국 섬유패션시장은 역풍을 이겨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싶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