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이자 교육자로서 30년간 봉직해온 대학교수의 직을 마치고, 산업혁명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공부를 하면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현재 우리 산업문명은 3세기 전 1차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의류산업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그 최선두에 서있다.
인간의 소비 행태는 인구 구조가 변하면 그 행태도 따라서 바뀐다. 14세기에 유럽 전역은 흑사병이 창궐하여 총 인구의 30~60%로 추산되는 인구 감소를 겪었다. 이후 흑사병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인구가 급증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인구 구조의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의 인구 증가는 유럽사회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폭발적인 급증세였다. 그 가운데 가장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한 곳은 영국이었다. 그러므로,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 역시 영국이었다. 이것이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의식주(生计住) 문제이다. 여기에서 먹을 거리(食)와 살 거리(住)의 해결은 쉽고 빠르게 산업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나, 입을 거리(衣)는 이들과 다르다. 산업혁명 전 영국의 직물 제조는 주로 양모(wool)를 원료로 하는 질 높은 모직물 생산이었다.
그러나, 1750년대에 들어서자 모직물 생산만으로는 끝없이 증가하는 인구로 인한 직물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질보다는 양이 중요한 소비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직물과 의류의 대량생산과 공급을 위한 일대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영국에서 18세기 중반에 면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혁신을 일으키게 된 근원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는 1~3차 산업혁명의 결과인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수용 한계에 봉착하며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각종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3차 산업혁명의 성과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강화되던 인구 증가세가 선진국들을 필두로 감소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자국 출생자수의 감소 현상은 1970년대에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시작되어 1980년대에 한국, 1990년대에는 중국까지 확산되었고, 계속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출산율 하락으로 가장 급격한 인구 감소세를 보일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3세기 전인 18세기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될 무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현상이다.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에는 유럽에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으나, 현재는 고소득 국가에서부터 차례로 출생자수가 감소하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구조 역전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M세대에서 X세대, Z세대, α(알파)세대로 갈수록 인구 감소폭이 커지며 산업화 과정 동안 질에서 양으로 바뀌었던 소비 행태가 다시 양에서 질(대량소비에서 맞춤소비)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차 산업혁명기에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따라 대량생산이 수월한 면직물이 시장을 장악하고 모직물이 퇴조하는 시장의 판도 변화가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 시대에 의류산업은 또 다시 판도가 재편될 수밖에 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18세기에 영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한민국에서 그 변화의 세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율 급감에 따른 인구 감소는 좁고 짧게 보면 내수 시장 축소로 위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넓고 길게 보면 향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나갈 시장의 성격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혁신을 먼저 그리고 강하게 이루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마치 18세기 영국에서 면공업을 일으키는 혁신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기회가 된 것처럼.
부디 우리 의류산업이 3세기 만에 찾아온 이 대기회를 슬기롭고 용감하게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산업으로 발돋움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