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사이언스(70) 패션 소비자의 상식을 말한다
비 오는 날, 어떤 소비자가 명품 브랜드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발이 시커멓게 물들었다고 분노했다. 그는 SNS에 “비 오는 날 명품가죽 슬리퍼 신었더니 일어난 일” 이라며 여러 장의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은 검게 얼룩진 맨발 사진이었는데 “이건 너무 심하다. 5번 씻어도 안 지워진다.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짜리이다. 비 오는 날 신지 말라고 알려주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어느 신문에 실린 내용 일부이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린 동조하는 수많은 댓글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극히 상식적인. 물에 젖으면 가치를 상실하는 가죽
갑자기 비가 올 때 여성이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비를 가리면 그 핸드백은 ‘짝퉁’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누구나 아는 이 농담 같은 얘기는 사실, 일격에 두가지 팩트를 관통하는 예지가 번득이는 블랙 유머이다. ‘비싼 가죽은 비를 맞혀서는 안 된다’ 는 사실과 ‘싸구려 가짜 가죽은 그래도 괜찮다’는 범세계적으로 통하는 상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인데…"
자동차가 침수되면 가치를 상실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해도, 단 1분이라도 침수되었다면 그 사실을 알고 자동차를 사는 바보는 없다. 어떤 제품은 절대 물에 젖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치가 손상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멸실(滅失)된다. 그런 제품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비 오는 날 신지 말라고 알려주시지”
“살아있는 고양이를 넣고 작동시키면 안 된다.”하고 소비자에게 경고하는 전자레인지 제품은 있을지 언정 “비 맞히거나 물에 빨면 안 된다.”라고 경고하는 가죽 제품은 결코 없다. 상식이기 때문이다. 바지를 살 때마다 서서 입을 때는 한발로 서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너무 심하다. 5번 씻어도 안 지워진다”
인간의 피부나 동물가죽이나 똑같은 콜라겐 단백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가죽을 염색한 염료는 사람 발도 똑같이 염색할 수 있다. 머리 염색약이 피부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는 이유이다. 염색이 잘 빠진다고 툴툴거리는 한편, 너무 잘 된다고 동시에 불평하고 있는 어이없는 장면이다. 자신이 좋아해 구매했던 죄 없는 브랜드 제품을 학살하기 전에 스스로의 상식을 먼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