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사이언스(72) 세상을 바꿀 혁신 의류관리기의 서스테이너빌리티

2025-06-19     안동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청결한 민족이다. 증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세탁기 역사는 무려 50년이다. 겨우 2250불,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의 6%에 불과한 1969년 후진국 시절, 이미 세탁기가 제조되기 시작했다. 밥은 굶어도 옷은 빨아야 했던 것. 누가 뭐라 해도 한민족에게 세탁은 숭고한 미덕이고 자존심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패션 관련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 3대 핵심인 ‘친환경’ ‘건강’ ‘자원절약’ 중 가장 놓치기 쉬운 명제가 ‘자원절약’이다. ‘건강’은 자신에게 즉각 영향을 미치는 현재 시제이고 친환경은 이타적이고 미래시제임에도 귀가 닳게 들어 익숙하기 때문이다. 무한히 제공되지 않는 모든 자원은 소중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수자원이다. 패션산업에서 가장 소모적인 자원낭비가 자체중량의 100배나 되는 물을 필요로 하는 화학 염색산업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세탁이다. 오구(汚垢)의 절반 이상이 기름 성분이기 때문에 이를 녹여 제거하기 위해 두들기거나 잡아 돌리는 물과의 강력한 마찰과 세제가 필요하며 이는 의류를 구성하는 주 재료인 원단입장에서는 가혹하고 지속적인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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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모든 것을 녹인다. 따라서 탈색은 물론, 방수나 발수, 흡한속건 기능 같은, 원단에 적용된 모든 후가공 제재들이 세탁할 때마다 조금씩 깎여 나간다. 원단은 수축하고 꼬인 실들은 느슨해지며 섬유들은 끊어져 나간다. 즉, 세탁은 의류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세제를 사용하므로 세탁이 끝나면 헹굼을 위해 추가적으로 대량의 맑은 물이 필요하다. 이는 곧 막대한 수자원의 낭비와 오염을 초래한다. 염색이 그런 것처럼 세탁도 역시 서스테이너빌리티의 숙적인 것이다.  겨우 2%의 빛을 얻기 위해 그보다 50배나 되는 열 에너지를 투입하여 필라멘트를 뜨겁게 달구는 백열전구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오구와 오로지 비강의 점막을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는 공기중 분자인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의류 전체를 세제를 푼 물속에 넣고 1시간 넘게 팡팡 두들겨 대는 세탁은 전구보다 더 효율이 낮은, 지독하게 원시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별다른 옵션이 없다. 한 달 입은 옷이나 하루만 입은 옷이나 완전히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탁은 드라이와 물빨래라는 고정된 두 가지 옵션뿐이다. 낭비를 수용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불쾌한 냄새를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혐오스러운 감각적 폭거를 강요해야 한다.  땀 자체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입고 있던 옷에 약간이라도 흘린 땀은 즉시 건조되지 않으면 세균이 발생한다. 그 결과가 바로 땀 냄새이다. 속옷 정도는 괜찮지만 다만 냄새 제거를 위해 다림질까지 추가되는 외투나 바지를 세탁기에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의 극치가 된다. 하지만 간단한 구김이나 냄새제거를 위해 다른 옵션은 없었다. 일명 ‘스타일러’라는 물건이 나오기 전까지는. 특히 호르몬이 왕성한 젊은 청년들의 옷은 한차례만 입어도 무조건 세탁통으로 직행해야 했다.  스타일러는 낭비가 심한 액체의 물 대신 수증기를 사용하여 사용량을 최소화 하며 옷을 두들기는 대신 초고속 진동으로 땀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스팀을 이용하여 주름까지 펴줘 방금 드라이클리닝한 듯 한 느낌을 준다. 사용된 물은 약간의 필터링만 거치면 재사용도 가능해 보인다. 오래되어 찌든 때라면 몰라도 그날 외출 시에 입었던 옷을 리플레시하여 완벽하게 입기 전 상태로 되돌려주는 데는 탁월하다. 앞으로 눈에 띄는 얼룩이 생기기 전까지는 세탁기에 돌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결과는 막대한 ‘수자원 절약’과 ‘수질공해 방지’이며 의류의 ‘절대수명 연장’이다. 잦은 세탁은 수세기 동안 위생의 아이콘이자 미덕이었지만 이제는 악덕이 될 것이다. 스타일러는 혁신적인 기능을 넘어 미래 가정에서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필수 ‘지속가능성 기기’가 될 전망이다.  그에 따라 가정의 세탁기는 지극히 단순하고 소형화 할 것이다. 스타일러가 수용하기 어려운 의류 세탁은 전문 세탁소로 가면 된다. 세탁소는 바빠질 것이다. 인류의 세탁 문화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스타일러’ 라는 임시로 붙인 이름은 ‘증기세탁기(Vapor Laundry)’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