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문가를 행세하는 비전문가들
2000-03-03 한국섬유신문
「다 해 봤는데, 소용 없어요.」
전시회 몇번, 컬렉션 몇번 한 베테랑 디자이너들에게
해외진출에 대한 가능성과 의욕에 대해서 물어보면, 거
의 90%는 이런 체념섞인 말을 한다.
『나가면 깨지는거 분명한데, 투자는 무슨.... 』
역시 해외시장 진출에 있어 재정적인 부담을 할 수 있
는 스폰서들의 불만이다.
직접 길을 뚫어보려는 당사자들이나, 후원업체 모두가
그동안의 노력과 결과에 얼마나 대책없는 상처를 받고
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
다.
그리고 이런 회의론적인 이야기의 배경에는 너도 나도
해외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기본적
인 그 루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갑갑한 현실
을 강력히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면에서 이태리와 파리쪽의 조직은 보다 치
밀하다.
예를들어 「에인젤 사업자」의 존재가 바로 그것으로,
이들의 임무는 몇 년동안이고 담당한 디자이너들을 지
켜보고 지원해주면서, 기술과 마케팅 홍보방법을 연구
하고 국제적인 유통망을 연결해주는 소위 전문가의 집
단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기껏해야 국내 홍보작업이 전부로,
그것도 관리와 심부름 차원을 벗어나지 못해 국제성이
전혀 없다는 평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소재, 봉제, 유통업자, 거
기에 사진과 인쇄업, 기획회사등등 각종 전문가가 긴밀
한 관계로 얽혀있는 이산업에 있어 비전문가들이 너무
나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들어, 한 프로젝트를 위해 5명이 모였다 하면, 거기
에는 일을 진행시키기 어려운 비전문가들이 2명이상 섞
여 있다고 한다.
명분을 위해, 혹은 형식에 맞추기 위해 끼워 넣어진 거
품이거나, 아무런 철학없이 한탕주의만을 노리는 이들
때문에 나머지 3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모든 것
이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선진국등지에서는 한 프로젝트에서 스텝 오
디션을 하면, 정말로 의욕과 재능이 뛰어난 프로들만이
모인다.
그러므로, 어떤일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지 않
아도, 그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추어 눈깜박할 사이에
일이 진척이 되어 원래의 재능을 훨씬 뛰어 넘는 작품
들이 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의 행세를 함으로써
형성된 거품이 빠지면서 바닥과 실체가 드러나는 과도
기임이 틀림없다.
디자이너라는 직종만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고, 나머지
직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
에 비전문가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시대가 막을 내
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돈만 있으면, 비전문가의 논리가 아무
런 검증없이 통용될 수 있었던 악순환의 시대에서 눈을
떠,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영원히 뒤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강
력히 지적되는 시점이다.
<유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