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스진즈 1백25주년 오리지널진즈의 부활로 반격
1999-06-08 한국섬유신문
「사라 리」에 이어, 미국 제2의 어패럴메이커 「리바이 스
트라우스」는 진즈의 원형을 특허신청한지 올해로 1백 25주
년을 맞는다.
연매상 69억달러, 이중 40%가 국제시장과 전세계에 군림하
는 진즈메이커로, 국내 진즈 시장에서는 디자이너브랜드와
프라이베이트 레벨등에 눌려 신장부진을 기록, 작년 11월에
는 공장의 폐쇄와 대폭적인 해고를 단행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오리지날 진즈의 부활을 슬로건으로 반격을 개시
하고 있다.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광고
5월초 리바이스는 빨간 텍의 리바이스의 로고와 함께, 「토
미도 입었다」, 「캘빈도 입었다」, 「랄프로렌도 입었다」고
하는 캐치프레이즈로 주요도시 빌보드에 등장, 큰 화제를 모
았다.
미국에서는 라이벌들의 이름을 이용한 광고는 드물지 않게
보이지만, 디자이너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리바이스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변혁기를 맞아 앞으로는 보다 소비자들과 친숙하게
다가서고 싶다」고 밝히는 국제판촉 상품 정보 담당의 기븐
파워씨는 「누구나 입었다고 하는 것은 리바이스뿐. 1백25년
의 역사와 오리지날 진즈라고 하는 것만으로 젊은이들에 대
해 커다란 영향을 미칠것」을 밝히고 있다.
올해 1월에는 67년간 거래해 온 광고 대리점을 바꾸고 전략
을 쇄신, 창시자를 새로 부각시키는 이벤트와 리바이스 이탈
한 틴즈를 되찾으려는 광고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1849년 개시한 골드러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수많은 사업의 기
회와 부를 보장했다.
뉴욕에서 온 리바이 스트라우스(1829~1902)가 잡화 도매 개
시한 것은 53년.
72년 리노의 양복점 재콥 데비스와 리베트부착의 웨이스트
오버올이라는 광부용 팬츠의 특허를 신청, 공장 생산을 개시,
2필의 말이 양쪽에서 끌어도 찢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상표는
49년에 탄생했다.
살아있는 진즈의 역사
처음의 시련은 1906년 대지농사로 모든 것을 잃은데서 시작
되며, 조카들이 이를 다시 재건했다.
그후 웨이스트 오버올이 진즈로 이름을 바꾸어서 선전한 것
은 50년. 동시에 진즈는 노동자에서 베이비 부머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일상복이 되었다.
헐리웃의 젊은 스타들이 즐기는 스타일로 60년대는 여성용
진즈와 아이템도 늘어 유럽에도 소개됐다.
71년에 주식을 공개, 79년에 20억달러 기업이 되면 80년대초
에는 종합 메이커를 목표로 타메이커도 매수와 페리 엘리스
등 디자이너와의 라이센스 계약도 체결했다.
85년 경영관리를 이유로 16억달러로 자사주식을 사모아서 개
인 기업으로 되돌리고 다시 주요부문의 경영으로 집중, 현재
매상고 10억달러에 달하는 캐주얼 팬츠의 도카즈를 89년에
내놓았다.
이 적절한 변혁에의 대응이야말로 진즈의 명문으로서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