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거워 꽃이지는 6월이더냐…조능식
1999-05-30 한국섬유신문
▼여름이 빠른 걸음으로 무르익어 눈부시던 신록이 어느새
검푸른 잎새로 무성했고 그 녹음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
갑다.
▼「때 맞추어 훈훈이 불어오는 남풍에 패어난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기 시작해서 이 곡식 아니면 벌써 목숨이 끊일만한
단지 밑 긁는 살림살이가 새 힘을 얻어 타작 마당 준비에 바
빠지는 보리가 그 동안 온 집안이 애쓴 보람으로 희고 단단
한 누에고치로 따게 되어 시골 사람들의 다시는 없는 비단인
명주 낳기도 시작되는 철입니다.
집집마다 고치실 푸느라고 고요한 마을이 자세소리로 나작히
흔들리게 됩니다.
이른 봄부터 울타리 밑을 헤매며 모이를 줍던 솜병아리도 어
느새 붉은 벼슬을 단 영계가 되어 대낮이 되면 짧은 깃을 치
면서 서투른 목청을 뽑아 울기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맨드라미(鷄冠花=계관화)피어날 때도 멀지는 않았습니다.
장독대 옆에 탐스럽게 피었던 모란꽃이 한잎 두잎 떨어져 시
들어버리고 나면 하늘은 줄기찬 비를 내리워 논고마다 물이
철철 넘치게 합니다.
넓은 들판이 커다란 호수가 되어 흰 구름이 그 위를 한가로
이 떠돌고 있는 것은 모 심은 철의 풍경화일게입니다」.(中
略)
▼이렇게 조지훈시인은 6월을 그리곤 했었다.
아닌게 아니라 6월의 산과 들은 풍년을 고대하는 담담하고도
평화로운 심정이 담겨져 있다.
-자고로 동양사람은 산(山)을 버리고 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산 속에 묻히어 사는 심정이란 곧
영원을 갈망하는 심정이기도 하다.
다시 조지훈은 이렇게 읊고 있다.
강들이 흘러 흘러 만년만 가리
산이 구름에 싸인들
새 소리야 막힐 줄이
안개 자자진 골에
꽃잎도 떨렸다고
소나기 한 주름 스쳐간뒤
벼랑 끝 풀잎에 이슬이 진다.
바위도 하늘도 푸르리라
고운 넌출에
사르르 감기는
바람 소리.
▼지난 3·4월에는 주중(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내리던 비가
5월에는 어김없이 주말인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비를 몰고 와
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전부터 (수십년 동안) 주말이면 비가 오던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다가 잠깐 외도를 했다가 다시 제 자리를 찾은 모양
이다.
작금 지구촌에는 예기치못한 온갖 기상변화가 일어나고 있
다. 이것들을 <엘니뇨>현상이란다.
때아닌 폭설, 폭우, 태풍에다 때아닌 우박등의 급습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히고 있어 또 무슨 변고가 들이닥칠지
도 모르는 <엘니뇨>의 광란(?)인 것을….
-그러나 6월은 5월의 신록을 녹음으로 물들이며 빠른 템포로
무더위를 몰고 와 버렸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 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 밭 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 달 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 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이 시는 「박목월님의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박한 6월
인생」의 풍경화다.
산과 들에 파뭍혀 살 수만 있다면 이 각박한 문명사회가 다
무슨 소용 있을가보냐─ 싶어 지는 자연의 노래다.
운거산(雲去山) 수귀해(水歸海)라─ 구름은 산으로 흘러가고
물은 결국 바다로 가고마는 것을─.
趙 能 植 (本紙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