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고] 되풀이되는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암호화폐 가상자산 시총 2143조 원 초기시장 리드하던 韓, 규제에 덜미 MP3는 아이패드, 싸이월드는 페북 선점시장 뺏기는 악순환 끊어내야

2025-11-06     박창규 교수
필자는 2024년 10월 22일부터 2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Blockchain Life 2024’ 행사에 스타트업 CEO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13번째로 열린 이번 행사는 120여 개국에서 1만2119명의 암호화폐(crypto) 관련분야의 리더들이 참가한 큰 행사였다. 이 행사의 포럼에는 Binance, Bybit, OKX, CoinMarketCap, Sandbox, Polygon, Cardano 등의 최고 기업의 임원과 분야별 선구자 200명 이상의 저명한 연설자가 참여했고, 125개의 전시 부스는 최근 암호화폐의 최신 기술과 혁신을 보여주었다. 이 행사에 부스 전시 및 연설을 한 한국 기업은 우리 딱 한군데였다. 세계 암호화폐 시장 거래소 규모 5위인 업비트, 18위인 빗썸조차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씁쓸함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한가지 위안은 전시장 내 한식 푸드트럭에서 떡볶이, 라면, 김밥을 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행사에서 만난 외국의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한국은 엄청난 시장인데 왜 한국 기업은 이런 글로벌 행사에 참여를 안 하고, 한국 사람들도 잘 안 보이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물어본다. 외국 거래소들마다 한국 이용자를 유치하고 싶은데, 한국인들은 다 원화 거래소만 찾는다고 아쉬워들 한다. 한국 정부의 규제에 대하여는 다들 혀를 내두른다. 도대체 한국은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외딴섬인 듯 보였다.
2024년 5월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2143조 원 (코인마켓캡 ’23년 말 기준)이고, 국내 시장의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43조6000억 원이다. 또한 국내 시장의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649조 원(‘23년 하반기)이다. 이토록 큰 잠재력이 있는 시장에 대한 국내 역사에는 많은 애환이 있다. 2017~2018년 국내 암호화폐 열기가 뜨거웠을 때, 한국의 블록체인 특허출원은 세계 3위 수준(특허청, ’18)이었다. 2017년 말 코인마켓캡이 집계한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는 35개였는데, 비트코인 거래량을 기준으로 홍콩의 Bitfinex(7.32%)에 이어 한국의 빗썸(3.58%)이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한국은 광범위한 인터넷 보급과 스마트한 소비자로 인해 암호화폐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원화는 글로벌 법정통화 거래량에서 꾸준히 상위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의 열기가 블록체인으로 옮겨가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6월 블록체인 기술 발전 전략을 내놓으며 육성방안을 발표한 바도 있다. 블록체인이 한국에서 꽃을 피우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이 뿌려졌다. 암호화폐로 인한 일반인의 피해가 속출하자 규제당국이 앞장서서 대책을 발표하였는데, 2017년 12월 1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암호화폐는 폰지 사기라며 절대 허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고, 2018년 1월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을 예고하였다. 이에 암호화폐 산업에 투자하거나 종사하는 민간기업들은 이에 반발하였다. 결국 ‘시장은 믿을 수 없으니, 정부가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포지티브 규제)’가 ‘정부는 믿을 수 없으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네거티브 규제)’를 누른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암호화폐 정책은 방치상태다. 암호화페에 대한 소득·법인세, 양도소득세, 거래 시 부가가치세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과는 다르게 거의 한국만 미징수 중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분명한 정의도 없고, 분석도 없고, 전략도 없고, 대책도 없다. 정부 당국에는 전문가도 전무하다.  성경의 마태복음 20장 16절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6~7년 전 암호화폐의 먼저 된 자였던 한국은 이제 나중 된 자가 되었고, 당시 이름도 없던 싱가폴이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들이 부상하고 있다. 1998년 한국이 출시한 세계 최초의 휴대용 MP3 플레이어는 2001년에 등장한 아이패드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1999년 한국의 대중적인 SNS였던 싸이월드는 2004년 페이스북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한심한 경험을 뒤로하고, 이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든가 아니면 먼저 된 자가 먼저 되는 환희의 기쁨을 맛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