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전쟁이 만든 슬픈 호황

과학기술 발전, 인류의 행복일까 덫일까 드론부대, 무인항공기, 로봇 등 전투방식변화 러·우전쟁, 3차 중동전쟁…남북한도 위기 토목·건축·디자인, 전쟁이 만든 서글픈 호황

2025-11-20     윤대영 한국미래연수원장
40년 전 군에서 처절하게 깨달은 진리,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도 너무 많다. 보병들은 고지 점령을 위해 산을 오르고, 고지를 지키기 위해 산 중턱에서 밤을 새운다. 동부전선 최전방 부대에 배치된 내 보직은 보병중대 작전병이었다. 전시에는 작전을 통제하는 무전기를 메고 중대장 바로 옆에서 전투 지휘를 보좌한다. 전투 중 긴급한 지원요청이나 상급 지휘관의 작전명령이 무전기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무전기를 멘 작전병의 존재는 중대 지휘통신에 필수 핵심이다. 평시 일과는 중대의 교육과 훈련을 준비하는 행정업무다. 1소대는 좌전방, 2소대는 우전방, 3소대는 후방에서 대기, 화기 소대는 전투 중인 전방 소대를 기관총과 박격포로 지원. 이런 내용의 작전 교범과 지도를 만들고 산과 들에서 기동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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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를 강원도의 산을 한밤중에 여러 개 넘는 훈련도 많았다. 보병이 보병(步兵)인 이유가 있다.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오직 행군과 구보로만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때 보직에 따라 병사들에게 불평등이 발생한다. 일반 소총 소대원들은 개인 군장과 소총만을 챙기지만, 화기 소대는 자기 군장과 소총 외에 20kg이 넘는 60mm 박격포를 운반한다. 1년에 한 번씩 연대나 사단급 대규모 기동훈련에서 마주치는 중화기중대의 경우는 더하다. 40kg이 넘는 81mm 박격포를 4~5명이 나누어 어깨에 들쳐업고 걷는다. 체력과 인내의 한계를 경험한다. 차량도 없이 걷고 뛰며 싸우는 보병부대가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기관총이나 박격포를 중대 안에 편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과 근접전을 하는 보병들에게 가장 무서운 살상 무기이기 때문이다. 전쟁사에서는 1차 세계대전을 참호전이라 부른다. 개인 소총을 무력화하는 기관총 사격 앞에 보병들은 땅을 파고 숨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1894년 갑오농민전쟁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두고두고 새겨야 할 치욕의 사건이었다. 공주를 거쳐 서울로 진격하려던 1만여 명의 농민군은 일본군 1개 중대 고작 2백여 명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전멸당했다.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농민군이 50여 차례나 돌격했으나, 당대 최고의 신무기 개틀링 기관총 앞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가을 낙엽이었다. 현대전은 갈수록 가공할 무기를 선보인다. 드론부대가 포병과 항공지원을 대신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무인항공기와 로봇으로 총포와 부대 편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전통적 개념의 전투 방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AI 산업이 발전하면 인류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3차 세계 대전이 현실화되면, 도덕 중립을 표방하는 과학 기술은 인류의 덫이 되고 말 것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생명 보전에 골몰하던 2022년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시작했다. 백만 명 넘는 난민이 생기고 양측 합쳐 백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숨졌는데도, 종전을 위한 협상은커녕 이역만리 떨어진 남북한이 전쟁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전쟁은 전쟁을 부른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기습공격으로 이스라엘 시민 1천여 명을 죽이면서 시작된 3차 중동전쟁은 지난 1년간 가자지구에서만 10만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주변 아랍국가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말려들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체인 풍산금속이 81mm 박격포탄을 레바논에 수출한다고 하니, 전쟁이 과연 그들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지전에 퍼붓는 폭탄의 위력과 규모가 점점 커진다. 파괴된 수천만 톤의 건축폐기물을 치우고 새로운 집과 건물을 지으려면 토목과 건축회사들이 호황을 맞을 것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데 디자이너들도 일감이 넘쳐날 것이다.  슬프다. 전쟁은 재건을 위한 파괴이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포매팅(formatting)이다.